“北비핵화 의무 지켜야”… 北주장은 한줄도 반영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일 03시 00분


■ 아세안안보포럼 의장성명 채택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南과 北



2일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제20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각국 외교장관들이 손을 엇갈려 잡았다. 윤병세 외교장관(뒷줄 왼쪽 끝)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앞줄 오른쪽 끝)이 정반대편에 서 있는 모습이 냉랭한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반다르스리브가완=신화 뉴시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南과 北 2일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제20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각국 외교장관들이 손을 엇갈려 잡았다. 윤병세 외교장관(뒷줄 왼쪽 끝)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앞줄 오른쪽 끝)이 정반대편에 서 있는 모습이 냉랭한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반다르스리브가완=신화 뉴시스
아시아와 유럽 등 27개국 외교장관들이 참석한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북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9·19공동성명을 준수하라”고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또 의장성명은 최근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청소년 9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장관들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는 표현도 포함시켰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인도적 우려는 이들 9명을 포함해 탈북자들의 생명과 안전 보호에 대한 것”이라며 “탈북자 문제가 ARF 의장성명에서 직접 거론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장성명은 북한의 주장은 한 줄도 반영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강도가 그만큼 커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비핵화 놓고 ‘26 대 1’의 구도 형성”

ARF 의장성명은 “(참가국) 장관들은 한반도 평화와 안보,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함을 재차 표명했다”고 밝혔다. 또 “장관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대북 제재 결의 2087호, 2094호 등을 준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강력한 외교전을 펴며 의장성명에 밀어 넣으려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의 주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내용은 며칠 전 회원국들에 배포된 초안에는 들어가 있었지만 최종 성명에서 통째로 빠져버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ARF 외교장관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대부분의 장관이 북한 비핵화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대해 강조했다”며 “북한은 이런 국제사회의 엄중한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된 이번 ARF 외교장관회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26 대 1의 구도나 마찬가지였다”며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는 국가는 단 한 나라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의장성명에 9·19공동성명 준수 등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문구만 들어가자 북한은 발끈했다. 박의춘 외무상과 함께 ARF에 참석한 최명남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9·19공동성명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우리는 9·19공동성명에 기재된 임무를 이행했으나 미국은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미국 등이 그에 상응해 경수로 제공 등 경제 지원을 하고 북-미 관계도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이 의장성명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도 격렬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당초 오후 2시경 나올 예정이던 의장성명은 오후 9시가 돼서야 발표됐다.

○ 중국과 러시아를 집중 공략하는 북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압박에도 북한이 태도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당분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미중, 한중 간 연쇄 정상회담이 마무리된 만큼 비핵화 대화 재개를 둘러싼 2라운드 탐색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북핵 불용의 원칙에 한국, 미국과 한목소리를 냈지만 비핵화 사전조치 등 방법론을 놓고는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다.

북한은 비핵화 요구에 반발하면서도 기존 대화공세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박 외무상은 이날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조미(북-미) 고위급 회담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비슷한 시간에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떠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이날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주중 북한대사관에 여장을 풀었다. 김 제1부상은 베이징을 경유해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 잠시 들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외교부에 따르면 김 제1부상은 4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티토프 외교부 제1차관과 이고리 모르굴로프 차관을 만나 6자회담 재개 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도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떠났다고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부부장이 6·25전쟁 정전협정일(7월 27일·북한에서는 ‘전승절’)에 중국 인사를 초청하기 위해 방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다르스리브가완=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아세안안보포럼#비핵화#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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