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 “사실 초과이익공유제는 바로 그(이건희 회장)가 이끄는 재벌기업의 경영 기법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기업은 초과이익을 임직원에게 나눠 주는 제도를 이미 운용하고 있었다.”(저서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 》
이명박(MB) 정부의 임기 4년차인 2011년 3월,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실무자들은 냉가슴 앓듯 속만 끓이고 있었다.
4·27 재·보궐선거의 격전지인 강원도지사, 경기 성남 분당을, 경남 김해을에서 여론조사를 해 봤더니 ‘0 대 3 참패’라는 결과가 나왔다. 2010년 6·2 지방선거 패배에 이어 ‘미니 총선’이라고 불린 4·27 재·보궐선거에서까지 지고 나면 MB 정권의 레임덕은 불을 보듯 뻔했다.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 조사(FGI)를 했더니 ‘한나라당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야 할 정당’이라는 민심까지 드러났다. 여의도연구소는 한 달이나 보고서를 움켜쥐고 있다가 선거가 임박해서야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사실 새해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2010년은 천안함 사건과 6·2 지방선거 패배, 세종시 수정안 부결 사태와 유럽발 재정위기가 있었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가고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성공적으로 치러 내면서 ‘다시 해보자’는 열의까지 느껴졌다.
1월 24일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MB와 30대 그룹 총수 간의 간담회도 마련됐다. 간담회 직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전체적으로 산뜻한 한 해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해 보니 수면 아래 민심의 바다에는 냉수대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무렵,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이른바 ‘낙제점 발언’이 터져 나왔다.
3월 10일 저녁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에 들어서던 이 회장을 향해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 냈다.
기자=회장님, 현 정부의 경제 성적에 몇 점 정도를 주시겠습니까?
이건희=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했으니….
기자=흡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건희=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
이건희는 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사회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
다음 날 MB 주재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이 나섰다. ‘왕실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MB의 신뢰를 얻고 있던 때다.
김두우=이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 (우리가) 못 견딥니다.
임태희(대통령실장)=삼성 쪽에서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설명을 해 왔습니다.
MB=….
김두우가 문제 삼은 건 ‘공산주의 발언’이 아니라 ‘낙제점 발언’, 더 정확히 말하면 ‘면(免) 낙제 발언’이다.
김두우는 MB에게 두 번, 세 번 ‘이건희 경고’를 주장했다. 그동안 김두우와 의견 충돌이 적지 않았던 이동관 언론특보도 ‘이건희 발언’ 건에 관한 한 경고론자의 편에 섰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MB의 반응은 이상하게도 미적지근했다. 이동관은 ‘아마 사위를 통해서 얘기가 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삼성전자 해외법무 담당 상무로 있던 이상주(현 해외법무팀장·전무)가 MB의 큰사위였다.
김두우의 직감도 이동관과 같았다. 그는 MB에게 ‘이건희 경고’를 거듭 건의하는 한편 삼성그룹 전체의 대외 창구인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장(사장·현 미래전략실 실차장)과 MBC 출신인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팀장(부사장·현 사장)을 만났다.
김두우는 단도직입적으로 “(삼성이) 각본을 짜고 던진 말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두 사람이 부인하자 그는 “그럼 혼네(일본말로 진심) 아니냐?”고 다그쳤다. 김두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도 사위를 앞세워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좌시하지 않겠다.”
장충기와 이인용의 증언은 좀 다르다. 먼저 장충기의 기억.
“김두우는 그때 딱 한번 만났을 뿐이다. 대통령 앞에서는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이인용도 비슷하다. “김두우와는 학번(76)도 같고 기자 시절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런 얘기를 나눌 사이는 아니다.”
장충기는 특히 “회장님은 대놓고 칭찬을 잘 안 하시는 분이다. 회장님이 만약 우리한테 ‘낙제점은 면했네…’라고 말씀하시면 삼성 사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거다. 그 발언은 ‘100% 만족은 못하지만 웬만큼 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럼 정작 MB는 ‘이건희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역시 증언이 좀 엇갈린다. 곽승준 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장관급)은 “대통령은 별다른 반응을 안 보이셨다. 오히려 경제수석이나 경제 관료들이 난리를 쳤지…. 대통령이 아무래도 (민간기업인 현대건설 CEO라는) ‘을’의 처지에서 오래 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MB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고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대통령경제특보를 거쳐 그즈음 KDB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옮긴 강만수의 기억은 정반대다. “내가 (대통령을) 뵈었을 때는 분명히 불쾌해 하셨다.”
이동관의 분석이 설득력 있다. “방법이 없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삼성이 해명을 하도록 만드는 것밖에 없었다. 평창 겨울올림픽도 걸려 있고, 삼성전자가 아니면 경제가 안 되는 판인데 어쩌겠느냐.”
권력과 재벌의 위상 변화를 새삼 느끼게 해 주는 말이다.
이건희는 김영삼(YS) 정부 때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발언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YS는 분노했고, 대통령의 분노는 곧 ‘응징’으로 이어졌다. 윤증현의 증언. “내가 그때 국장이었는데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삼성에 대한 신규 대출은 즉각 중단됐고…. 하여튼 삼성이 혼이 났다.”
김두우가 이건희 발언에 대해 ‘각본’ 아니냐고 의심한 것도 그런 전력 때문인지 모른다.
여하튼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윤증현이 나섰다. 기재부 간부들은 ‘즉각 경고’를 주장했지만 그는 3월 14일 국회 답변 형식을 통해 강하게 유감을 표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회장이) 어떻게 그런 인식을 가졌는지 안타깝고 서글프다. 과연 낙제점을 면할 정도의 경제정책을 펴는 나라에서 어떻게 글로벌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답을 해 줬으면 좋겠다.”
삼성도 ‘비공식 해명’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은 윤증현의 국회 발언 이틀 뒤인 16일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회장님의 진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공개 해명했다. 그래도 청와대의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자 이건희는 31일 ‘2011 스포츠 어코드’ 행사 참석차 런던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직접 해명했다. “그것 때문에 골치가 좀 아팠다. 내 뜻은 경제성장이 잘됐고, 금융위기도 다른 나라보다 빨리 극복했고 이런저런 면에서 잘했다는 뜻이었다.”
‘이건희식(式) 어법’으로 보면 이른바 ‘낙제점 발언’이 MB 정부의 경제정책을 폄훼하려는 뜻에서 나온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권력은 어느 때나 재벌에 기대하는 게 있기 마련이고, 그 기대가 어긋나면 ‘발언의 진의’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일자리 창출에 목을 매던 MB에게는 삼성의 선도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상회담을 하러 나갈 때도 기업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총수 대신 전문경영인만 데리고 나간 MB였다.
2008년 취임 초 어느 날. SBS 보도본부 미래부장 출신의 김상협 미래비전비서관은 MB가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한마디를 곰곰이 생각했다.
“삼성은 왜 인사(人事)를 안 하는 거야? 눈치 보지 말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게 하고 투자도 하는 게 맞는 것 아냐?”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이건희는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에 발목이 잡혀 그룹 인사도, 투자 계획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MB는 이건희가 답답했다. 김상협은 좀 놀랐다. ‘오죽 답답하면 대통령이 재벌그룹의 인사 문제까지 언급할까.’
김상협은 삼성의 ‘요로’에 MB의 뜻을 전했다. 전하는 것 또한 MB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특검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투자에 나서 주십시오.”
비자금 수사의 여파로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학수 부회장의 동반 퇴진’으로까지 내몰렸지만 이듬해 말 MB는 이건희를 특별 사면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던 이건희를 사면해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전력을 다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이건희 한 사람을 위한 전례 없는 ‘원 포인트’ 사면이었다.
김상협은 MB가 퇴임한 뒤 어느 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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