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수십 명이 미얀마 반군에 억류돼 강제노동과 성매매에 동원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은 12일 태국과 국경이 닿아 있는 미얀마 타칠레크 인근 반군 관할 지역에 탈북자 64명이 억류돼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한 이들은 중국을 거쳐 태국으로 가려다 반군에게 붙잡혔다는 것이다. 이 중 남성은 족쇄를 차고 마약밭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있으며 여성은 현지 식당과 무허가 술공장에서 일하면서 현지인과 중국인을 상대로 한 강제 성매매에도 동원되고 있다고 김 국장은 전했다. 억류기간도 짧게는 1년에서 최장 9년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국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반군 책임자와 강제 동거를 하고 있는 탈북여성이 현지 한국인 선교사에게 ‘김치가 먹고 싶다’고 부탁하면서 대규모 탈북자 억류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달 3일부터 9일까지 현지를 방문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억류된 탈북자 대부분은 여성이며 그동안 고된 노동과 질병을 이기지 못해 현지에서 숨진 탈북자도 25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국장은 “반군은 1인당 5000달러(약 560만 원)를 주면 원하는 곳으로 탈북자들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며 “몸값을 마련해가지 못한 상태여서 억류된 탈북자를 직접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기관 등을 상대로 모금활동을 벌여 몸값이 마련되는 대로 다음 주에 미얀마 현지를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탈북자들이 미얀마 반군에 억류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국장은 “7년 전인 2006년에도 반군에게 탈북자 80명이 억류돼 있었으며 이 가운데 6명을 1인당 3000달러(약 340만 원)씩 지불하고 석방시켜 한국에 데려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재원 부족으로 추가로 구출할 순 없었지만 당시 탈북자들을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을 거쳐 출국시켰기 때문에 외교부가 모를 리 없다는 게 김 국장의 주장이다. 한 탈북단체 관계자는 “미얀마를 탈북 루트로 삼은 탈북자 가운데는 2∼3년씩 반군에 붙잡혀 있다 풀려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등 관계기관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얀마 국경지역은 사실상 반군의 자치령으로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제한적으로만 닿고 있으며 외교부가 지정하는 여행경보에서도 3단계인 ‘여행제한지역’으로 묶여 있다.
김해용 주미얀마 대사는 본보와의 국제통화에서 “김 국장의 말을 종합하면 탈북자가 억류된 지역은 타칠레크 북동쪽 샨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곳은 반군이 장악하고 있어 외국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경로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으나 아직 억류 사실이 확인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 대사는 “2006년 탈북자 40여 명이 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했지만 반군에 잡혀 있다가 탈출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북자 대규모 억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5월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사건에 이어 또다시 탈북자 보호의 허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는 9일 재외총영사회의에서 탈북자 보호·이송 업무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기로 하고 △국가별 사정에 맞는 맞춤형 탈북자 협력시스템 구축 △탈북자 유관단체와의 소통 강화를 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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