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민주당의 대선 패배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58)은 민주당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꼽힌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인사는 “박 시장만 한 상품이 없다”며 “인권운동(민변)에서 권력 감시(참여연대), 풀뿌리 자치행정(서울시장) 등 박 시장이 손을 대 성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 여의도의 때를 덜 탄 신선함, 영남(경남 창녕) 출신이란 것도 상당한 강점”이라고 말했다. 비노(비노무현) 진영은 박 시장이 친노(친노무현)계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박 시장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서울시장은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라며 “자기 본분에 소홀하고 다른 생각(대선)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국회의원이라면 몰라도…. (서울시장 일이) 하루 종일 바쁘고 정신없는데 시장에 충실해야죠”라고 말했다. 야권의 차기 주자로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함께 거론되는 데 대해서도 “(서울시장) 재선(再選)을 해서 서울을 정말 반듯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박 시장으로선 시정에 전념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도 없어 보인다. ‘시장 박원순’의 성공이 어떤 시나리오도 가능할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말이다. 박 시장과의 만남은 15일 오전 8시 서울시청에서 20여 분간 이뤄졌다.
―박 시장은 부인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야권에선 유력 차기 주자로 평가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분을 잘 인식하고, 철저한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자기 기반마저 무너진다.”
―‘정책의 완결성’을 내세워 일찌감치 시장 재선 도전 의사를 밝혀 왔다. 재선되면 정책은 완결되나.
“보궐선거로 들어와서 한 텀(임기)도 제대로 못한 상황이다. 정책이 효과를 내고 정리가 되려면 한 번은 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 내건 ‘7조 원 채무 감축’ 공약에 대해 최근 ‘애초 약속한 만큼은 쉽지 않다’고 했는데….
“채무는 1조 원 이상을 줄였지만 약속한 만큼은 쉽지 않더라. 그러나 채무 확대라는 추세를 꺾어 놓은 것, 돌려놨다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워낙 경기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서울시는 스스로 세원(稅源)을 만들어낼 수 없다. 가령 지방세 중 하나인 취득세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경기가 어려우니 세출이나, 복지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적자를 메우거나 적자를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원전 하나 줄이기’란 구호로 반핵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서울시장이라기보다는 대선주자로서의 행보 아닐까.
“서울시의 에너지 자립도는 2.8%밖에 안 된다. 이러니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이 걱정이 되는 거다. 그래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도시 안전을 지키자는 건 시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나는 기후변화 세계시장협의회 의장이기도 하다. ‘원전 하나 줄이기’는 대단히 중요한 정책이다. 시정(市政)이다.”
―서울 집중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서울은 서울대로 독자적 발전의 길을 가야 하는데 제약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서울시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도 부족하고 예산도 너무 줄었다.”
―한 번도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독자 신당에 대해 긍정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절대로 없나.
“지금 나는 민주당 소속이다. 선거는 당 소속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지금 인기가 좀 없기는 하지만 인기 떨어졌다고 옮길 수 있나.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고 본다.”
박 시장은 여러 인터뷰에서 안철수 신당 합류 가능성에 선을 그어 왔다. 며칠 전엔 인재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안 의원에 대한 조언을 요구하는 질문에 “인재 영입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집단지성의 힘으로 풀어 가면 좋겠다”고 ‘훈수’를 둬 “견제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안 의원은 박 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한 인연이 있지만 이제는 경쟁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래도 안 의원에게는 큰 빚을 졌다. 빚을 갚겠다는 생각은 없나.
“그게 기업의 대차대조표 같은 게 아니다. 안 의원은 아름다운 결단을 해줬고, 내가 당선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고맙고 죄송한 마음 때문에 안 의원이 선거에 나왔을 때 만났다. 시민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관계이지 않을까 싶다.”
안 의원은 4·24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뒤 박 시장에게 회동을 제안했다. 박 시장의 말은 (안 의원에게 진) 빚을 어느 정도 갚은 것 아니냐는 뜻으로 들렸다.
―민주당 내에선 박 시장이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시장에 재도전하겠다고 한 것을 매우 반기고 있는데….
“내가 원래는(2011년 10월 선거 때는) 무소속이었다. 당선되고 나서 한참 후에 입당(2012년 2월)했다. 민주당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나는 민주당에게 데려간 자식 같은 존재 아니냐. 특히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에서도 굉장히 불안한 눈으로 봤던 모양이다. 그러니 민주당 당원으로 다음 선거를 치르겠다, 민주당 당원으로서의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말에 대해 안심하고 고마워하는 것 같다.”
―민주당 지지율이 낮다. 당원으로서 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나는 늘 주제넘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서울시장으로서 본분을 잘 지키고 시민들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하면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본다.”
박 시장은 답변 내내 대선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박 시장을 만나 본 민주당 인사들은 “박 시장이 ‘대권’이란 꿈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최근 박 시장을 자주 만나고 있다는 한 의원은 “1000만 유권자, 30조여 원의 예산 등 서울시장의 위상, 여기에 특유의 소통하는 리더십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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