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으로 내몰리는 탈북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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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북-재탈북… 그들은 왜 정착못하나
대사관 오기전까진 정부 도움 못받아… 브로커 활용 불가피… 정착금 뜯겨
정부 “시혜대상→동반자 정책 전환”

‘탈북→재입북→재탈북→강제북송 위기.’

탈북자 김광호 씨가 지난 4년간 겪은 인생 역정이다. 그는 2009년 8월 아내와 함께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가 2012년 말 재입북했다. 그리고 올해 6월 27일 다시 탈북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북한을 떠난 김 씨는 14일 중국 옌볜(延邊)에서 공안에 붙잡혔고 현재 강제북송과 한국행 사이의 기로에 서 있다.

광주지검 공안부는 16일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북한으로 가려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탈북자 A 씨(25)를 구속 기소했다. 2011년 탈북한 A 씨는 국내 정착 지원금을 탕진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탈북 여성과의 결혼생활도 파경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중국을 거쳐 재입북하려다 비자가 나오지 않자 부산과 일본을 거쳐 북한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부유(浮游)하고 있다. 21세기 한반도의 경계인(境界人)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6·25전쟁 직후 이념 갈등 때문에 남북한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제3국행을 택했던 것처럼 요즘 탈북자들은 남북한 양쪽에서 ‘이방인’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지(死地)인 북한에 되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탈북자가 늘고 있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례도 올해 상반기(1∼6월)에만 7명에 이른다. 지난해 말까지의 총 재입북 수(9명)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재입북을 시도한 탈북자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 것은 물론이고 정착지원제도에 따른 혜택도 끊긴다. 북한에서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럼에도 극단적 선택으로 이들이 내몰리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요인들의 중심에 경제적 궁핍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탈북자가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조차 부분적인 도움만 주고 있다. 해당국과의 외교관계, 재정적 부담 등 때문이다. 그 틈새에서 탈북 수수료를 노린 전문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이는 탈북자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한국 정착 부적응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 남한行 급행료 1000만원… 정착금 받아도 빈털터리 ▼

○ 생활고에 시달리던 탈북자, 北 유인납치로 재입북


지난해 말 재입북한 김광호 씨가 올해 1월 24일 북한 조선중앙TV에 나왔다. 그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재입북한 이유에 대해 “나를 남조선으로 유인한 계약서대로 돈을 다 주지 못했고 재판에도 져서 집을 떼우고(빼앗기고) 엄청난 재판비용까지 물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씨는 거주지인 전남 목포에서 탈북 브로커로부터 채무변제 소송을 당해 정부에서 제공한 집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부인 김옥실 씨도 “임신한 몸으로 한 푼이라도 벌려고 뛰어다녔지만 도저히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며 생활고에 시달렸음을 토로했다. 김 씨에게는 장모와 처제, 처남 등 북한에 남겨진 가족이 있었다. 1인당 700만∼1000만 원에 이르는 탈북 브로커 비용이 엄두가 나지 않은 김 씨는 직접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북한행을 결심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1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가족들의 탈북을 원했던 김 씨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와 연결된 안내인에게 속아 사실상 유인납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입북이 아니라 절박한 사정을 활용한 북한의 덫에 김 씨가 걸려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씨는 가족을 데리고 최근 북한 땅을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중국 공안에 붙잡혀 한국행에 제동이 걸렸다.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은 “공안에 체포되기 전인 8일 주중국 한국대사관에 연락했으나 ‘대사관까지 김 씨 가족을 데려오지 않으면 돕기는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탈북자는 재외공관이나 행정기관의 장을 찾아가 직접 보호를 신청한 때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한국의 행정력이 미치는 대사관까지 탈북자가 도착하지 않는 이상, 주재국의 현행법을 어겨가며 탈북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한국 외교관이 ‘불법 입국자’인 탈북자를 공관 바깥에서부터 인솔해오면 주재국과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통일정책의 틀 안에서 탈북자 정책 재검토해야

통일부는 제3국에서 이뤄지는 이산가족 생사 확인이나 서신 교환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탈북 브로커 비용은 지원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주재국에 머무는 동안 ‘불법 입국자’ 신분인 탈북자에게 한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고 보조금이 공식 지급되는 순간 브로커가 엄청나게 양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브로커 비용까지 지급하면 ‘한국 정부가 탈북자를 유인, 납치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빌미가 된다”고 덧붙였다. 입국에 성공한 탈북자 1명이 받는 정착지원금도 700만 원(1인 가구 기준)에 불과하다. 탈북비용 충당은커녕 살림도구 마련에도 빠듯한 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북자 정책을 탈북 및 정착 지원 차원에서만 보고 있다”며 “탈북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안정되게 정착하는 ‘작은 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한 남북통일의 길도 요원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중국 내 탈북자는 한국 정부가 책임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고 그에 따른 부담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주 재입북을 예고한 탈북자 손정훈 씨(본보 16일자 A12면 보도)는 “지금과 같이 다문화가정보다 못한 대우로 탈북자를 방치해두는 것은 통일로 가는 길이 아니다”며 “정부가 실질적으로 탈북자 정착을 도울 수 있는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는 남북한을 모두 등지고 제3국으로 망명 신청에 나서는 ‘탈한자(脫韓者)’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탈북자를 ‘시혜 대상’으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동반자’로 바꿔나가는 정책적 변환을 시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통일부 전체 예산의 50% 이상이 탈북자 지원에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그 업무는 아직도 ‘과(課)’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해외 탈북자 송환 문제부터 국내 정착까지 포괄하는 범정부적인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탈북자#브로커#정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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