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신사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지도리가후치(千鳥ヶ淵)전몰자묘원’이라는 무명 전몰자 추모시설을 별도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국외에서 사망한 사람 중 신원을 알 수 없거나 유족을 찾지 못한 35만여 명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1만6000m²의 묘원으로 일본 환경성이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몰자묘원은 야스쿠니신사에 비하면 한참 덜 알려져 있는 시설이다.
이 묘원의 성격은 야스쿠니신사와 대비되면서 일본의 오늘을 설명한다. 종전 후 일본은 국외 전몰자의 유골을 수습하기 시작했는데, 이 유골 중 연고자를 찾지 못한 유골에 대한 위령시설이 필요했다. 국가가 운영하는 이런 공적 위령시설이 정교분리 원칙에 저촉되는지도 검토했다.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1953년 12월 11일 각의는 국가의 책임으로 유지하는 전몰자묘원 설립을 결정한다. 흥미로운 점은 1953년 당시 미국 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거절한 것이 일본 정부에 새로운 전몰자 추모시설의 필요성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들이 타국을 방문하면 으레 해당국의 국립묘지 같은 곳을 방문하는데, 일본 정부는 닉슨 부통령을 마땅히 초대할 곳이 없었던 셈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올해 5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인터뷰에서 야스쿠니신사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비유했는데, 전문가들은 야스쿠니신사가 아니라 이 묘원이 그런 곳이라고 지적한다. 매년 8월 15일이면 일왕 부부와 총리가 이곳을 찾아 참배를 하지만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일본 내에서도 2006년 이 묘원을 확충할 계획을 세웠으나 야스쿠니신사 측과 일본 유족회 측에서 반대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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