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일 “별도의 증세를 안 해도 공약재원 마련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제 상황과 세수 여건을 감안했을 때 정부가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재원 조달 방안이 구체적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산정된 측면이 강한 데다 예산안 편성을 위한 세수(稅收) 전망도 거의 매년 ‘장밋빛’으로 흐르며 실제 세입과 맞지 않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당장 상반기(1∼6월) 세수가 지난해에 비해 10조 원 가까이 급감하며 나라 곳간 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금 파동’을 제대로 수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세수 추계와 재정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방만한 공공부문의 씀씀이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나중에 혹시 있을지 모를 증세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데도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 경제상황 낙관하며 세수 추계
기획재정부는 13일 세법개정안 수정안으로 인한 세수 부족분 4400억 원에 대해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루를 강화해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부가 밝힌 방안은 대형 유흥업소와 고급주택 임대업 등에 대한 정보수집, 국가 간 정보교환 및 대기업의 역외탈세 추적 등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방안들이 세정 당국이 원래부터 역점 사업으로 강하게 추진해 오던 사안들이었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더 열심히 해서 목표를 늘려 잡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기존의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도 산출 근거가 희박했는데 이를 또다시 추가 재원 확보 방안으로 둘러대는 것은 너무 안일한 태도라고 지적한다.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올해 2조7000억 원, 내년 5조5000억 원 등 2017년까지 27조2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건지 전혀 설명이 없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재원 마련 계획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정비인데 문제는 이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항목이 없다는 것”이라며 “공약 실현을 위해 세수 추계를 정확히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 안 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 계획을 아무리 세밀하게 짠다고 해도 앞으로 경기가 좋아지지 않을 경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경기 회복→세수 증가→수월한 재원 마련’이라는 선순환을 바라고 있지만 국내외 경제 상황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전문가들은 공약 이행에 강한 의지를 가진 정부가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하면서 세수 추계가 어긋나는 사례가 다시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최대 국정목표인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았다가 결국 경기가 예상과 다르게 흐르며 올 초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 공공기관, 부채 늘어도 연봉은 매년 올라
정부가 복지 확대에 나서기 전에 우선 방만한 정부지출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부실경영이 여전한 데다, 한정된 정부 예산을 부처마다 중복·과다 편성하고 또 대규모 투자 손실을 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2012 회계연도 재정사업을 분석한 결과 512개 사업에서 예산 집행관리 부적절, 예산 과다·과소 편성, 성과 미흡 등 문제점이 발견됐다. 특히 한국석유공사는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한 건에 8000억 원이 넘는 예산 손실을 본 사례도 적발됐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도 여전하다. 지난해 말 기준 295개 공공기관의 부채는 500조 원에 육박하고 있지만 경영 성과와 무관하게 기관장이나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전체 공무원 수도 6월 말 현재 99만1481명으로 하반기 1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 정부의, 공무원 추가 채용 기조에 따라 정부부처들의 ‘몸집 불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전체 135조 원 중 60%가 넘는 84조 원을 세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처럼 공공부문의 규모와 씀씀이 자체가 커진다면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세출은 확고한 기준과 원칙, 우선순위를 정한 뒤 낭비요소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며 “그래야 각 부처나 정치권의 반발을 누를 수 있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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