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해제 MB5년]<21>DJ의 國葬을 許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7일 03시 00분


“호남도 같이 가야지”… MB ‘6일로 줄인 國葬’ 직접 절충

2009년 5월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8월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명박(MB) 대통령 뒤로 보이는 DJ 영정 사진은 일본 주간지와의 인터뷰 때 찍은 것으로, DJ가 평소 좋아했던 사진이다. 처녀 때부터 동교동에서 DJ를 모셔온 장옥주 전 김대중평화센터 공보국장이 골랐다. 동아일보DB
2009년 5월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8월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명박(MB) 대통령 뒤로 보이는 DJ 영정 사진은 일본 주간지와의 인터뷰 때 찍은 것으로, DJ가 평소 좋아했던 사진이다. 처녀 때부터 동교동에서 DJ를 모셔온 장옥주 전 김대중평화센터 공보국장이 골랐다. 동아일보DB
《 박지원 의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DJ는 나한테 '국민을 위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국민에 의해 대통령으로 뽑혔고, 국민을 위해 일하다 죽었으니 마지막 가는 길도 국민이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정작 DJ 자신은 동작동에 묻히고 싶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지만….” (2013년 8월 13일 동아일보 인터뷰) 》

흙을 파자 무덤 자리에선 오색토(五色土)가 나왔다.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다른 묘역에선 볼 수 없는 적송(赤松)이 지키고 있었다. 거의 하루 종일 햇볕이 드는 자리였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평소 소나무를 좋아했고, 추위를 많이 탔다.

2009년 8월 23일, DJ는 그렇게 영면(永眠)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의 여러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내셨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서거하셨습니다.”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의원이 DJ의 서거를 발표하자마자 정가와 국민들의 관심은 ‘국가장이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석 달 전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처럼 장례의 격을 둘러싼 국론 분열이 재연될 조짐마저 보였다.

이명박(MB) 청와대는 긴장했다. DJ가 7월 13일 입원한 이후 맹형규 정무수석비서관은 박지원과 긴밀한 연락을 취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좀처럼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전화를 주고받으며 만약에 대비했다.

박지원은 나름대로 다섯 가지 원칙을 정해두고 있었다. 첫째, 국장(國葬)으로 치러야 한다. 둘째, 장지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해야 한다. 셋째, 평생 의회주의자였던 만큼 영결식은 국회에서 거행해야 한다. 넷째, 북한에서 조문사절이 와야 한다. 다섯째, 국제적인 장례식이 돼야 한다. 박지원은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차남 김홍업 전 의원에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일체 비밀에 부쳤다. 소생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에야 ‘동교동 가신들’인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전 의원에게도 장례 계획을 설명했다.

18일 오후 1시쯤, 박지원은 맹형규를 급히 찾았다. “앞으로 30분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다.” 맹형규도 즉각 MB에게 ‘DJ 서거 임박’ 사실을 보고했다.

그런데 박지원은 DJ의 서거 소식을 발표하자마자 다시 맹형규에게 연락했다. “지금 좀 만나자. 내가 청와대로 들어가겠다.” 그동안 매일같이 통화를 했던 박지원이 굳이 청와대를 방문하겠다고 하자 맹형규는 ‘아, 국장을 요구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직감했다. 박지원의 기억. “청와대에서 정정길 비서실장,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맹형규, 그리고 내가 마주 앉았는데 이달곤이 굉장히 반대했다. 이달곤은 국장도, 동작동 국립현충원도 안 된다고 했다. 정정길은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었고…. 맹형규만이 ‘DJ는 (다른 대통령과) 다르다’고 했다.”

주무 장관인 이달곤이 계속 반대하자 박지원은 최후통첩을 했다.

박지원=“이명박 정부는 국민대화합을 부르짖고 있지 않느냐?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고 나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10%는 올라갈 것이다.”

이달곤=“현직 대통령(박정희)의 장례식 외에 국장을 치른 전례가 없습니다.”

박지원=“(화를 벌컥 내며) 그럼 관둬라. 우리는 그냥 가족장으로 치르겠다.”

아무래도 MB가 직접 결론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맹형규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있는 자리에서 MB에게 ‘국장을 허(許)하자’고 건의했다. “정부 수립 이후 역사의 고비마다 인물들이 나왔습니다. 건국 시기엔 이승만, 개발 시대엔 박정희가 있었지만 민주화 시대엔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이 있었습니다. 국장으로 최고의 예우를 다해야 합니다.” 정치부 기자 시절 DJ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동관도 거들었다. 맹형규의 기억. “예민한 문제라 다들 드러내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국장을 치르는 데 부정적이었다. 특히 (국가정보원 같은) 기관에서는 부정적인 보고가 많았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MB가 절충안을 내놨다. 국장으로 하되 대신 6일장으로 조정하라는 것이었다. 국가장은 장례 기간을 최대 9일까지로 지정할 수 있다. 박정희가 그랬다. 하지만 DJ의 경우 유족들도 “그렇게 오래 치를 필요는 없다”고 양해한 상황이었다. 그러면 7일장인데, MB가 ‘6일장’을 절충안으로 꺼낸 것이다.

6일장으로 하면 일요일(8월 23일)에 영결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따로 임시공휴일을 지정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2009년에 들어서자마자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제정부’ 체제를 선언한 MB로서는 공휴일이 하루 더 늘어나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사실 MB는 DJ 서거 이전에 이미 국장을 결심하고 있었다.

서거 열흘 전쯤 청와대 연풍문 2층. 원래 청와대 방문객들을 위한 면회실이었으나 6개월 전쯤 새로 단장해 문을 연 곳이다. 연풍문 2층엔 북카페와 휴게실, 소규모 회의실이 있어 MB는 가끔 여기서 주요 비서관, 행정관들과 ‘깜짝 미팅’을 가졌다.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는 비서관들과 편안하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기회로 활용했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MB가 “무슨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이던데…”라며 김두우 정무기획비서관을 쳐다봤다. 사실 의전비서관을 통해 이날 연풍문 미팅을 ‘기획’한 건 바로 김두우였다.

김두우는 기다렸다는 듯 A4 용지 한 장을 꺼냈다. DJ 서거 시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경우의 ‘정치적 대차대조표’였다. DJ라는 인물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호남의 정서 등 국장을 해야 하는 정치적 당위성과 함께 단점도 적시한 보고서였다. 단점은 역시 장례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과 임시공휴일을 지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중앙일보 정치부장 출신의 김두우는 TK(대구 경북)였지만 DJ와 DJ당(黨)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MB가 말을 끊었다. “나는 이의가 없어!”

그렇게 한마디를 던진 다음 MB는 딴 얘기를 했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미팅이 끝날 때쯤 되자 MB는 “아까 그것 말이야. 장례 기간을 좀 줄여서 영결식이 일요일과 겹치도록 하면 어때? 그러면 따로 임시공휴일을 정하지 않아도 되잖아?”라고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두우의 기억. “대통령은 딴 얘기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내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건의하기 전에 이미 ‘국장’을 결심하고 계셨던 것 아닌가 싶다.”

김두우는 마음이 바빴다. MB의 결심을 확인한 이상 혹시 있을지 모를 정치적 장애물들을 미리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그렇고, 박근혜 전 대표도 신경이 쓰였다. 박근혜가 ‘아버지는 재직 중에 돌아가셨지만 DJ는 이미 퇴임한 대통령 아니냐. 경우가 다르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쪽에는 ‘2012년 대선 때 호남을 껴안기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상도동 쪽은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는 YS의 차남 김현철에게 심부름 역할을 부탁했다. 처음엔 “어른(YS)이 마땅치 않아 하신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곧 다시 연락이 왔다. “국장으로 하되 장지는 (대전이 아닌)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하는 게 좋겠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은 김두우의 ‘대차대조표’에 없었다. 역시 YS였다. DJ의 문제는 바로 자신의 문제 아닌가!

급히 동작동 묘역을 다시 점검했다. 담을 없애면 DJ 말고도 4기 정도의 묘소가 더 들어설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김두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YS는 물론이고 설령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안장한다고 하더라도 1기가 남는 셈 아닌가! 그럼 훗날 MB도 동작동에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국립현충원 측이 종전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4기의 묘역을 더 마련할 수 있다는 검토보고서를 올렸지만, DJ의 묘소는 유족들이 직접 찾았다. 국립현충원 측에서도 유족의 선택에 맡겼다. DJ가 서거하자 전국의 지관들이 유족 주변과 박지원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박지원의 기억. “심지어 비서실장(박지원)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리로 (DJ의) 묘소를 잡아주겠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교동 가신들로부터 ‘DJ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던 박지원이었다. 조심해야 했다. 국립현충원 내 묘소 선택은 김홍업에게 맡겼다. 김홍업은 경기 용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모와 고모의 묏자리까지 마련할 정도로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다. 김홍업이 지관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자리가 바로 지금의 묘역, 오색토가 나오는 자리였다.

영결식 일주일 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MB에게 몇 가지 경제상황 보고를 마친 뒤 DJ 국장 얘기를 꺼냈다. 노무현 영결식 때 “술 한잔하고 싶다”며 몇몇 측근들을 부르던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강만수=“국장으로 결정하신 건 정말 잘하셨습니다.”

MB=“(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지며) 음, 그래∼. 이제 호남도 같이 가야지.”

김창혁 선임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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