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선서 안하면 위증해도 처벌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7일 03시 00분


전문가들 “증언 아닌 그냥 진술, 법적 효력 없어 위증죄 성립 안해”
재판중인 國調증인 선서거부 가능

증인 선서를 거부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1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한 말들은 증언(證言)으로서 효력이 있을까. 또 거짓말을 했다면 위증(僞證)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3조와 형사소송법 148조는 국회에 출석한 증인이 재판 등의 이유를 소명하는 경우 선서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쏟아 낸 발언들이 거짓말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증언감정법 14조(위증 등의 죄)는 선서를 한 뒤 위증 사실이 밝혀지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위증을 무거운 범죄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선서를 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현재 법은 선서를 한 증인이 위증했을 때의 처벌만 명문화했을 뿐 선서를 하지 않은 증인이 거짓말을 한 경우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선서를 하지 않은 증인의 거짓말은 위증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테크앤로 구태언 변호사는 “선서를 하지 않고 한 말은 증언이 아닌 진술이 된다”고 말했다. 박찬종 변호사는 “위증죄는 선서를 위반한 것에 대한 사법방해죄인 만큼 선서를 하지 않았으면 위증죄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증언감정법 12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선서를 거부한 증인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재판’을 근거로 선서를 거부했기 때문에 처벌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법의 맹점을 악용했다”고 들들 끓었다. 실제로 김 전 청장은 청문회장에 변호사와 함께 출석했고, 원 전 원장은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변호사 2명을 릴레이 접견한 끝에 출석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한 것 자체가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새누리당 권선동 의원은 “피고인 신분이어서 선서를 거부한 것”이라며 “법정에선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만 여론 재판인 이곳(국정조사)에서는 유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국정조사나 국정감사에서 증인이 출석을 거부한 사례는 많지만 증인 선서 자체를 거부한 것은 이례적이다. 1988년 정기국회 국정감사 때 남덕우 당시 한국무역협회장은 “무역협회는 국감 대상 기관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증인 선서를 거부한 바 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증인선서#위증#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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