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제안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대선은 물론이고 인수위원회 때도 검토되지 않던 사업이다. 그러나 4월 박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이후 다른 대북 공약을 제치고 최대 역점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19일 참모들에 따르면 이 사업은 장기적으로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까지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DMZ 세계평화공원이 박 대통령의 관심을 확 끌게 된 이유는 뭘까.
○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대표작
4월 박 대통령의 고심은 깊었다. 취임 전부터 북한의 도발 위협은 계속됐고, 개성공단 가동도 잠정 중단됐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대로 가동하기도 전에 벽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그즈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대표작 구상에 몰두했다. 개성공단이나 이산가족 상봉은 중요한 사업이지만 새로운 화두는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만의 작품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이 여러 안 중 하나로 제시됐고 박 대통령은 “바로 이거다” 하며 채택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DMZ 생태공원을 경기 북부 공약에 포함했었지만 그때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생태관광 차원의 접근이었다. 이를 세계평화공원 구상으로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답답하게 막혀 있던 개성공단 정국의 돌파구 측면도 있었다. 남북 간에 막혀 있으니 유엔, 미국, 중국 등과 함께 DMZ 공원을 논의하며 우회적으로 뚫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박 대통령은 DMZ 공원 구상을 5월 미 의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밝혔고 이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논의해 지지를 이끌어 냈다.
○ 박근혜 대북 철학과 일치
박 대통령이 DMZ 공원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자신의 대북 철학과 여러모로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큰 이벤트성 사업이 아니라 조금씩 신뢰를 쌓아 가는 DMZ 공원 조성 과정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취지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 일각에서는 DMZ 전체를 공원화하자는 아이디어도 냈지만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큰 욕심을 내기보다 상징적인 공간에서부터 무기를 없애고 신뢰를 쌓아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원의 규모를 크게 하거나 대규모 시설물을 지으려는 생각도 없다고 한다.
그동안 남북 협력 모델은 주로 돈이 오가는 경제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DMZ 공원은 경제협력보다는 평화를 위해 신뢰를 쌓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매력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 때 DMZ 공원 조성을 북한에 제안하며 “평화를 만드는 것은 상호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일을 여는 과정에서 평화협정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며 “DMZ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들이 자연스레 협의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아 장기적으로 협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DMZ 공원이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새로운 모델이라는 점, 남북뿐 아니라 세계평화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대통령의 관심을 끌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정전협정 기념식에서 모든 6·25전쟁 참전국에 DMZ 공원 참여를 제안한 이유다.
○ 이르면 다음 달 북한에 구체적 제안
정부는 5월 8개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내부 공감대를 이루는 작업을 우선 진행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군부가 반대할 가능성이 크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DMZ 지역을 비무장화할 경우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예상보다 컸다”며 “그동안 안보 공백이 없도록 하겠다는 설득 작업을 벌여 왔다”고 말했다. 유엔과도 비공식 협의를 지속해 왔다. 정부는 유엔사와 협의를 거쳐 입지 후보지를 비롯한 구체적인 안을 이르면 다음 달에 북한에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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