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묻혀 있던 국군포로의 유해 한 구가 10일 북-중 접경지역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왔다. 중국인 브로커가 이 유해를 운반해 와 중국 모처에 대기하던 한국 유가족에게 건넸다. 이 유가족은 현재 “유해가 한국으로 무사히 송환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정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군포로의 유해가 민간의 힘으로 온전하게 북한 땅에서 반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국군포로 A 씨(1925년생)의 유해는 함경북도의 북-중 접경지역에서 강 건너 중국으로 옮겨졌고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그의 딸 측에 전해졌다. A 씨의 딸은 중국인 브로커에게 유해 운반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A 씨는 북한에서 결혼해서 살다가 1984년 1월 숨을 거두기 전 딸을 따로 불러 “너만이라도 꼭 한국 땅으로 가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20여 년이 지나 탈북한 딸은 A 씨의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결국 북한에 남아 있는 친인척들이 한밤중에 무덤에서 A 씨의 유해를 수습한 뒤 배낭에 넣어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인 브로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해 송환에 관여한 한 인사는 “현재 유해는 (중국 내)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있으며 관련자들이 모두 모처에서 향후 상황 추이를 보면서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A 씨의 딸은 유해의 한국 송환과 관련해 국방부 등 정부의 협조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그는 최근까지도 유해 반출에 들어가는 비용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정부가 중국인 브로커 비용 같은 금전적 지원을 해 주진 못하더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안전하게 한국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국내로 옮겨질 때 유해를 태극기로 덮어서 예우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가족의 바람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에서는 “일단 유해가 한국 땅으로 들어와 국군포로인지가 확인되면 그에 따른 예우를 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2004년 이연순 사단법인 6·25국군포로가족위원회 대표가 아버지 이규만 씨의 유해 반출을 시도했으나 당시 중국 공안에 적발되는 바람에 유해의 절반이 유실됐다. 이 외에도 한국으로 송환된 4구의 국군포로 유해가 더 있지만 북한에서 유골을 화장해 함에 담은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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