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온갖 탄압’도 그 이유 중 하나로 내세웠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통일애국인사’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내란음모 사건을 ‘모든 진보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마녀사냥극’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남한 내 공안사건을 남북관계에서 대남 압박카드로 내세운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석기 사건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사건과 북한의 연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뒤늦게 남한 내 자기네 편을 은근히 격려하고 고무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건에 대한 북한의 그동안 태도는 ‘연관성 부인’에 초점이 있었다. 이달 6일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보인 첫 반응은 “괴뢰보수패당이 이 사건을 우리와 억지로 결부시켜 보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대화 평화 노력과 북남관계 개선에 참을 수 없는 모독이며 용납 못할 도발”이라는 주장이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 “남한 내 북한을 지지하는 세력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으니 북한으로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도 “북한이 남한 내에서 활동하는 진보단체, 반미 반보수 단체들을 통일애국단체라고 하면서 지원 사격해 온 것은 맞다”며 “이석기 사건은 이들에 대한 탄압의 일환이며 결국 그런 정부의 태도는 반통일적이라고 몰고 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이날 대변인 성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표현을 포함시킨 이유도 북한의 저의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과거 공안사건이 일어났을 때 북한은 ‘우리와 관계없다’며 무조건 꼬리 자르기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마냥 꼬리 자르기를 하다가는 추종세력들의 지지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의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 때도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사건을 조작해 남조선 각계의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일대 탄압소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진보세력들의 활동을 ‘친북’으로 몰아 말살해 보수 세력의 재집권을 실현해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왕재산 사건을 비난했지만 이번처럼 대남 협상카드나 압박카드로 활용하지는 않았다고 정부의 다른 관계자가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