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걸고 넘어져선 절대 안 되는 게 있다. 이산가족 어르신들의 애타는 마음을 사실상 인질로 삼은 것인데,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22일 한 정부 당국자는 전날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 연기 통보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 내에서는 격앙된 반응 속에서도 “시간에 쫓기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의 싸움”
25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산가족 상봉에 참여하는 대상자 중 90대 이상의 고령자는 28명으로 역대 상봉 행사 중 가장 많았다. 정부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90대 이상 상봉자들의 시급성을 감안해 선정 과정에서 최고 가중치를 부여한 결과였다.
3년 만에 열리는 행사인 데다 고령자가 많다 보니 통일부는 행사장에 들여놓을 간이침대까지 챙기고 있었다. 김동민 할아버지(79)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 투병 중이고 최고령자인 김성윤 할머니(95)도 상봉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한때 건강 상태가 크게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준 할아버지(91)는 상봉 예정일을 불과 엿새 앞둔 19일 별세했다.
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2만9035명(8월 기준) 중 사망자는 벌써 5만6544명. 생존한 신청자 중에서도 70대 이상의 고령층은 전체의 80.1%에 이른다. 이 중 80대의 비율은 10년 전인 2003년 18.3%에서 40.3%로 22%포인트나 늘었다. 이산가족은 해마다 4000명 가까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그렇다 보니 이산가족 신청자 대비 사망자 비율도 계속 증가해 2003년 15.9%에서 올해 43.8%까지 높아졌다. 현 추세대로라면 3년 이내에 신청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50%를 넘길 것이라고 민주당 정청래 의원실은 분석했다.
그러나 이산가족들이 수십 년 쌓아 온 ‘한’을 풀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산가족들은 2000년부터 12년간 모두 18차례의 상봉 행사를 통해 2만1734명만이 가족과 재회했을 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산가족들이 죽기 전 한 번이라도 상봉하려면 매년 7000명 이상으로 상봉 대상자를 늘려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문제는 북한이 인도주의적 사안인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에 무산된 19차 이산가족 상봉 외에도 이미 여러 차례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2001년 4차 상봉 때에는 정부의 ‘비상경계조치’를 이유로 상봉 행사를 중단시켰고 12차와 13차 때에는 ‘납북’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남측 언론의 취재를 제한했다. 그런가 하면 2006년 7월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정부가 쌀과 비료 지원을 유보하자 금강산에 짓고 있던 이산가족면회소의 건설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이산가족 문제를 대남 ‘카드’로 활용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일연구원의 임순희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쌀, 비료나 전력 지원 등과 연계하며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데 급급하다”며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이라는 근본적 이슈가 아닌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북한을 상대로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상봉이 어려울 경우 최소한 가족들의 생존 여부만이라도 확인하자”고 요구하며 이들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할 수 있는 장비 지원 등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묵묵부답 상태다. 통일연구원의 김수암 선임연구위원은 “이산가족 문제는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는 만큼 국제 여론을 움직여 북한이 약속을 지키도록 계속 촉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총회 및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 채택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계기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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