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동의 없인 법안처리 불가능 “국정 발목잡기 법적 보장해준 꼴”
전문가 “합의정신 살릴 제도 보완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극한 대립으로 9월 정기국회가 20일째 표류하면서 국회선진화법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이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에선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부분적으로 접고 국회로 복귀하더라도 각종 법안의 신속한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것으로 지난해 새누리당이 발의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과 전시·사변 및 국가비상사태로 제한했고, 여야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선 국회의원 재적 5분의 3 이상 찬성을 얻도록 했다. 새로 도입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제도)를 종료할 때도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또 상임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을 경우 안건조정위원회를 여야 동수로 구성하되 조정안 의결은 3분의 2 찬성을 얻도록 했다. 총선에서 한 정당이 전체 국회의석 300석 중 60%(180석) 이상을 차지하기 힘든 현실에서 야당의 동의 없이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셈이다. 올 초 박근혜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도 이 법안 때문에 새누리당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정책라인 의원들은 종종 민주당을 ‘슈퍼갑’이라고 부른다. 야당의 재가를 받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의미에서다. 일부 의원은 “과반 의석을 얻고도 쟁점이 별로 없는 민생법안까지 처리하지 못할 바엔 여당을 할 이유가 없다”는 말까지 한다. 한 재선 의원은 “5분의 3 이상 찬성 요건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며, 소수당의 발목잡기를 법제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는 “여야가 상대를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 정치 현실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한 것은 시기상조였다”며 “위헌법률심판 등 국회법의 위헌성을 다퉈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왕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킨 만큼 성숙한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야가 좀더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 시점에서 국회선진화법을 고쳐 예전의 강행 처리 문화로 돌아간다면 정치 발전도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여당의 ‘정치력 부재’와 야당의 ‘발목잡기’가 맞물리면서 반복되는 국회 파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야 모두 더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치 환경이 바뀐다고 룰을 계속 바꾼다면 정치선진화는 요원해진다”며 “국회 의사 결정 과정에서 다수주의와 합의주의를 절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입법 취지를 살리되 법안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 법안심사소위 등에서 법안을 세분해 토의하고 합의된 법안은 빨리 통과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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