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올해 풍년이라지만… 영유아 7만명은 급성영양실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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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숨겨진 굶주림]<上>국제기구들 “히든 헝거를 찾아라”

《 북한 평양 시내에 택시가 늘어나고 밤거리엔 불빛도 많아졌다고 최근 방북한 인사들이 전했다. 그러나 영·유아 등 취약계층의 소리 없는 굶주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필수 영양소 결핍 문제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런 북녘의 ‘히든 헝거(Hidden Hunger·숨겨진 굶주림)’의 실태와 그것을 찾아 개선하려는 국내외 단체들의 노력, 그리고 근본 해법에 대한 고민 등을 3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5월 30, 31일자의 ‘굶주리는 북녘’ 상하 시리즈의 2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다. 》
북한의 영·유아와 어린이들은 식량 배급 대상에서 소외되고, 그 때문에 필수영양소의 결핍에도 시달리는 이중 삼중의 ‘숨겨진 
굶주림(히든 헝거)’을 겪고 있다. 북한 유아들이 탁아소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빵인지 떡인지 구분하기 힘든 음식을 국물과 함께 먹고
 있다. 다른 반찬은 보이지 않는다. 유니세프 제공
북한의 영·유아와 어린이들은 식량 배급 대상에서 소외되고, 그 때문에 필수영양소의 결핍에도 시달리는 이중 삼중의 ‘숨겨진 굶주림(히든 헝거)’을 겪고 있다. 북한 유아들이 탁아소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빵인지 떡인지 구분하기 힘든 음식을 국물과 함께 먹고 있다. 다른 반찬은 보이지 않는다. 유니세프 제공
“이 아이들이 몇 살로 보이나요?”

지난달 중순 태국의 수도 방콕에 위치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지역본부 사무실. 오시다리 겐로 아시아지역본부장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겨 있는 몇 장의 북한 어린이 사진을 보여줬다. “예닐곱 살?”이라는 기자의 말에 오시다리 본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열 살”이라고 말했다.

“열 살의 한국 아이들은 사진 속 아이들보다 키도 훨씬 크고 건강하지 않습니까?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못한 북한 어린이들은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극명한 (남북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WFP의 존재이유 중 하나입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의 아시아 허브’라고 불리는 방콕에서 북한의 이런 히든 헝거를 찾아서 해소하려는 오시다리 본부장 같은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북한의 외형적 호전 속에 ‘감춰진 굶주림’

5월 방북했던 오시다리 본부장은 “주민들이 과거보다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듯 보였다”며 “홍수 태풍 같은 외부 충격이 올해는 줄어든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제기준에 비춰 북한의 영양공급 상태는 여전히 크게 열악하다고 WFP 측은 설명했다. 올해 3월 발표된 ‘2012 북한 영양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5세 이하의 어린이 6만8000여 명은 급성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이 중 1만 명은 생명이 위급한 위험 수위에 놓여 있다. 지역별 편차도 커서 양강도나 자강도의 급성영양실조 비율은 평양(2.3%)의 3배에 육박하는 6% 수준이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크리스토퍼 드 보노 아시아담당 대변인도 “북한의 식량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고는 해도 외부의 충격이나 변수에 크게 취약하다”며 “국제기구의 지원이 조금만 줄어도 식량과 백신 공급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WFP는 ‘긴급구호-회복-개발’의 3단계 중 북한에서 현재 2단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연간 4000t 분량의 어린이용 영양 비스킷,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강한 식품, 슈퍼시리얼 등을 북한 내 7개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북한 내에 2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관련 업무를 챙기고 있다. 유니세프의 경우 급성영양실조 등 상태가 심각한 아동을 중심으로 ‘영양치료식’ 제공 같은 긴급구호에 집중하고 있다. 유니세프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생산한 뒤 직접 북한으로 운송하는 이 치료식은 아이들이 먹기 편하게 걸쭉한 잼 형태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이다. 달짝지근한 땅콩버터 맛이 나는 이 치료식의 봉지포장 1개는 500kcal에 이른다.

○ 북한 어린이의 숨겨진 빈곤=영양소 결핍

북한에서는 쌀밥이나 옥수수죽 등으로 탄수화물 섭취를 어느 정도 하는 어린이들의 경우에도 비타민과 미네랄, 철, 요오드 같은 미량원소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언론에 공개되는 북한 탁아소나 학교의 급식 장면에도 국과 밥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다른 반찬은 찾아보기 어렵다. 식품군의 종류가 극히 한정돼 있다 보니 성장에 필수적인 단백질은 물론이고 미량원소들도 만성 부족인 경우가 많다.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이를 “히든 헝거 속의 히든 헝거”라고 부른다. 소외계층인 영·유아들이 식량 배급 등에서 소외되면서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이중, 삼중의 굶주림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유니세프 관계자는 “특히 생후 6∼59개월 아동들의 경우 비타민A를 보충하는 것이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필수 영양소의 경우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충분히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임신부 지원에도 집중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트리엔 구스 WFP 아시아지역 영양 어드바이저도 “초기의 발육 부진은 어린이들의 향후 성장에 되돌릴 수 없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북한에서 2세 미만의 영·유아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니세프는 조그만 개별 사탕봉지 크기로 포장된 복합미량 영양보충제 가루를 만들어 북한 어린이들에게 제공해 왔다. 크리스 히라바야시 유니세프 도쿄사무소장은 “소량만이라도 제때 제공하면 아이들의 뇌 발달과 면역력 증진, 균형 잡힌 신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지원 재개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의 전반적인 대북지원 사업은 최근 후원금 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올해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유럽을 비롯한 ‘큰손’ 후원국들의 지원 규모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WFP는 원료를 구매할 자금이 부족해 5월에 7개 영양 비스킷 공장 중 6개가 문을 닫기도 했다. 클라우디아 폰 로엘 WFP 공여국장은 “당시 60만 명의 아이들에게 비스킷 공급을 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에 대출을 받아서 다시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방콕=손영일 기자·김철중 기자 scud2007@donga.com
#히든헝거#북한 기아#북한 영양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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