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로 30주기를 맞은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는 잊혀지고 있다. 특히 역사교과서에서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언급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동아일보가 2014년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8종을 확인한 결과, 아웅산 폭파 사건을 언급한 책은 1종에 불과했다. 교학사에서 발간한 교과서는 ‘1983년 10월 9일 북한은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을 시해하기 위하여 아웅산 묘역에 폭탄을 설치하여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을 사망케 하였다’고 적었다. 나머지 7종은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 북한의 또 다른 대표적 국제테러인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도 교학사 교과서에서만 유일하게 언급됐다.
다른 교과서들은 대부분 ‘북한의 변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한의 노력’ 같은 단원에서 1980년대 이후의 남북관계를 다루며 화해협력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또 신군부가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뒤 집권한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면서 전두환 정부에서의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지면을 거의 배정하지 않은 점도 ‘아웅산 테러 외면’의 이유로 작용했다.
북한의 대남도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처럼 ‘과거 주요 사건’이 잊혀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남북한의 국력 차이 때문에 전면전을 일으키기 어려운 북한은 특수부대를 활용한 비정규전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 양상이 강화되고 있다”며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한 국내 인식이 옅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웅산 사건을 주도했던 북한군 정찰국은 2009년 2월경 작전국과 합쳐져 국방위원회 산하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실제로 북한이 정찰총국을 출범시킨 후 도발의 양상이 과거와 다르게 비타협적인 군사 모험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2009년 5월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같은 해 11월 대청해전을 일으켰다.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까지 군 주도의 무력도발을 이어갔다.
8종 교과서 중 교학사를 제외한 대부분은 ‘서해안에서 양측 간 군사적 충돌’ ‘천안함·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됐다’는 식으로 짧게 서술했다. 3곳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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