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식량분배 연출하고 회수… “전달 투명해야 쌀 줄텐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북녘의 숨겨진 굶주림]<中>발묶인 국내 대북구호단체들

“아직 돌도 안 된 아기 같았는데 36개월이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눈이 퀭하거나 피부가 안 좋고 얼굴엔 마른버짐이 피어 있고….”

8월 방북해 남포의 한 어린이병원을 둘러보고 돌아온 대북구호단체 어린이어깨동무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설사병과 영양부족 전문인 이 병원은 남포 밖의 다른 지역에서 몰려온 어린이 환자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물이 안 좋고 먹는 것도 부실하니까 설사병에 걸리는 아이가 많다. 링거 수액만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초기에 금방 치료될 텐데 기초 의약품이 부족하니 상태가 악화되고 치료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안타까워했다.

국내의 대북 지원단체들은 세계식량계획(WFP)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보다 북한의 ‘히든 헝거(Hidden Hunger·숨겨진 굶주림)’에 접근하기가 구조적으로 더욱 어렵다. 영유아 등 취약 계층과 시골 같은 취약 지역의 빈곤, 영유아의 필수 영양소 결핍 및 의료 서비스 부족 같은 히든 헝거 문제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북한의 ‘히든 헝거’

정부가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6개 대북구호단체의 방북과 지원물자 반출을 승인하면서 이들은 최근 잇따라 평양과 남포의 탁아소와 어린이병원 등을 방문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민간 구호활동이 일부나마 재개된 셈이다.

정부가 허용한 지원품목은 민감 물자인 식량보다 의약품과 영양제, 의료소모품 등이다. 따라서 이 단체들의 방북 모니터링도 주로 의료시설에 집중돼 있다. 의약품 지원 모니터링을 위해 방북했던 조규석 순천향대부천병원 교수는 “지원 대상인 병원의 수술실에 수술대가 없고 마취장비도 없었다”며 “아예 확인할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다른 지원단체 관계자는 “과거 대북지원이 중단되면서 우리가 지어주던 어린이병원의 건설공사가 5년 가까이 중단된 상태였다”며 “얼기설기 모양만 갖춘 병원에서 병실 내 온도가 섭씨 30도를 넘고 침대가 없어서 어린 환자들이 평상 같은 곳에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영유아의 영양 상태에 대한 이들 단체 관계자들의 평가는 “외관상 좋지 않아 보였다”는 주관적인 인상평 수준이다. 북한이 극소수의 제한된 대상에 대해서만 직접 접촉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등 모니터링을 철저하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북한 탁아소와 보육원에서는 남측 인사들이 방문하기 직전 아이들을 목욕시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점심밥도 그릇에 가득 남아내는 등 ‘연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관계자는 “우리가 어린이들의 상태를 직접 볼 수도 없었고 지원대상 시설의 관리인들과 이야기하고 온 수준”이라고 했다.

북한의 실상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보니 국내 민간단체들은 현재 북한의 ‘히든 헝거’를 해결하기는커녕 실태 파악과 진단조차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북측의 요구에만 근거해 대북 지원 품목과 규모를 결정하고 정부의 승인요청을 받는 ‘블라인드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민간단체들 사이에서는 북한을 자극할까 봐 부정적인 면모나 참혹한 실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최근 방북 인사들이 북한 입맛에 맞는 ‘좋은 얘기’만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북한 취약계층의 영양 결핍, 히든 헝거의 문제는 더 부각되기 어려워졌다”며 안타까워했다.

○ ‘줄 식량’은 있는데, ‘줄 방법’이 없다

정부는 북한 영유아들에게 제공할 빵과 국수의 재료인 밀가루, 설탕, 분유 등만 소량으로 승인하고 있다. 대규모 곡물 지원은 아직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군 식량과 통치에 필요한 물자 등으로 전용(轉用) 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쌀은 2009년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아예 지원 목록에서 사라졌다. 밀가루와 옥수수 같은 식량도 전용 가능성을 이유로 사실상 승인 제외 품목이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는 6월 황해도 및 평안도 13개 지역의 유치원과 탁아소 어린이 6만여 명을 지원하겠다며 통일부에 밀가루 1000t과 옥수수 1200t의 반출 승인을 요청했지만 4개월째 답변을 못 받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쌀이나 밀가루 같은 식량은 모니터링 요원들이 분배 상황을 확인했는데도 이들이 철수하자마자 북한 당국이 다시 회수해 다른 목적으로 전용한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투명한 분배가 확인되지 않는 한 그런 품목의 지원 승인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강영식 북민협 사무국장은 “줄 식량은 있는데 대북 접촉이나 지원 등이 원천적으로 어려워 줄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커가는 아이들이 분유나 두유만 먹고 살 수는 없는데도 쌀 같은 식량을 줄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국 시민권자로 1년에 6, 7차례씩 사리원 등지를 방문한다는 푸른나무 신영순 공동대표는 “북한 아이들의 주식은 여전히 쌀밥이 아니라 강냉이”라면서 “아이들이 너무 작아서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도, 일어났는지 모를 정도”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정은·이샘물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식량분배#히든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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