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선거 공천폐지’ 발빼는 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2일 03시 00분


새누리 반대 많아 의총 상정도 못해… 당론채택 민주도 與눈치 보며 침묵
‘특권 내려놓기’ 대선공약 흐지부지

여야가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약속했던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가 사실상 물 건너가고 있다.

공천 폐지에 대한 당론 채택을 미루고 있는 새누리당에선 폐지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 역시 내부적으로 반발 기류가 커지면서 이렇다 할 후속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국회 정치쇄신특위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난달 활동을 종료했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 핵심 관계자도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해선 당론 결정을 위한 의원총회를 열어야 하는데 안건이 상정되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공천 폐지를 반대하는 의원들은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하면 최소한의 검증 장치마저 사라지고, 이름과 경력만 보고 투표하는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내 영향력과 권한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지난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여야 지도부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고 있다. 지도부가 결정을 계속 미루자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결말을 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은 16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방이 너무 혼란스럽다”며 “우선 당론을 정하고 야당과 협상해 정기국회 안에 결말을 내자”고 말했다.

7월 전(全) 당원투표에서 찬성 67.7%로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 역시 새누리당 눈치만 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에 “당론으로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결정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민주당 지도부의 공식 회의석상에서도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가 사라진 지 오래다.

민주당의 침묵은 이번 장외투쟁 과정에서 정당공천 폐지에 따른 위험을 실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외집회에 시의원과 구의원 등 기초의원의 참석률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을 두고 민주당 호남지역 한 의원은 “예전에는 공천을 의식해서 모든 행사에 적극적이던 시의원들이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뒤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직 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회 의원들은 중앙당의 어정쩡한 태도에 반발하고 있다.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정당공천폐지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노영관)는 15일 부산 송도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제176차 전국시도대표회의’에서 정당공천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기초의회 공천만 폐지하고 기초단체장 공천은 유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농촌 지역에서는 출마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황승택 기자 leon@donga.com
#기초선거#정당공천제#공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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