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공단 폐쇄사태 이후 처음 “北 3通 보장안해 가장 힘들어”
정부 “출근못한 北근로자 임금줘야”… 기업들 “가동지연 책임 전가” 반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북한을 한 번 더 믿어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못 믿겠더군요.”
4월 개성공단 폐쇄 사태 이후 123개 입주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실크유통이 철수하기로 했다. 국제실크유통의 모(母)회사인 한중실크유통 관계자는 4일 통화에서 “지난달 중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철수 신고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 재가동 후 북측의 태도가 돌변하는 것을 보고 공단이 언제 또 폐쇄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1981년 설립된 한중실크유통은 실크 원사(原絲)를 수입해 경남 진주시 직물시장 등에 납품하다가 개성공단의 낮은 인건비를 이용해 중국산에 맞서보기로 하고 2007년 원사 생산업체 국제실크유통을 세웠다.
그러나 6년 만에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9월 개성공단이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국제실크유통의 북측 근로자 26명은 원사 생산 대신 설비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국제실크유통 측은 “개성공단 폐쇄로 바이어들이 등을 돌려 버티기 힘들었다”며 “북측 근로자들의 임금과 퇴직금, 세금 등을 정산한 뒤 다음 달 완전히 빠져나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4년 가동에 들어간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는 기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에 앞서 모피업체 스킨넷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이듬해 한미 연합 군사연습 키리졸브 때 북한의 남측 인력 귀환 금지 등을 보고 회의를 느껴 2009년 철수했다.
한중실크유통 관계자는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를 꼽았다. 개성공단에 가려면 사흘 전 통일부에 신고해야 돼 다급한 상황에서 낭패를 본 적이 많다. 그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통화도 되지 않는데 (개성공단) 국제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심재익 한중실크유통 대표는 “힘들게 다시 시작한 개성공단이 잘돼야 하는데 입주업체가 손해를 보고 빠져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남은 업체들에 득이 될 리 없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가운데 현재 재가동을 하지 않고 있는 기업은 국제실크유통을 포함해 세 곳이다. 2004년 말 개성공단 1호 제품인 ‘통일냄비’를 만들었던 소노코쿠진웨어는 2010년 공장에 불이 나 가동을 중단했다. 태광산업의 섬유 자회사 태광산업개성은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다른 입주업체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3통 문제 해결, 개성공단 국제화 등 남북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바이어들이 계약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재권 개성공단 정상화촉구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바이어들이 주문을 망설여 공장 가동률이 50%도 채 안 된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장을 가동하면서 매각을 검토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가죽제품, 잡화 등을 생산하는 아트랑은 자회사 개성아트랑의 지분 매각에 나섰다.
한편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정상 가동이 지연되면서 근무하지 못하게 된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11월부터 지급하라는 북한의 요구에 대해 통일부는 4일 “일종의 휴업수당인 만큼 당연히 해당 기업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의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에 따르면 기업 사정으로 출근을 못하는 근로자가 있을 경우 기본급의 60%를 생활보조금으로 지불하게 돼 있다”며 “10월까지는 면제하도록 남북 간에 합의했으나 11월부터는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입주기업들은 “4월 북한의 일방적 출입 차단으로 바이어를 잃어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는데 그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 건 맞지 않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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