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이 11일 임기 말 한국정보사회진흥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36개 국가 전자정부시스템의 설계도 등 세부 자료들을 ‘참고’한 뒤 진흥원에 돌려줬다고 밝혔지만 의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노무현재단은 “돌려줬다”고만 밝혔으나 정확한 반환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 IT 전문가들 “외장하드로 제출 자체가 문제”
새누리당은 ‘퇴임 후 반환’을 기정사실화하고 ‘국가 재산의 사유화’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흥원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로 파견됐던 권모 행정관을 통해 반납됐다”고만 밝힐 뿐 외장하드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돌아왔는지에 대해서는 “파악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국가의 핵심 보안사항이 담긴 외장하드가 한동안 ‘통제 밖’에 있었는데도 그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전에도 국가기록물 반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18일 퇴임 직전 이지원(e知園·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을 봉하마을 사저로 그대로 옮겼고, 이후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이지원 서버 하드디스크를 같은 해 7월 국가기록원에 반환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 측이 퇴임 후 청와대 자료 유출 문제가 불거지자 서둘러 이 자료를 진흥원에 반환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업계 전문가들은 외장하드의 반환은 기술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전자정부시스템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정부 관계자는 “사실 외장하드를 돌려받은 것은 의미가 없다. e메일로 보낸 자료를 다시 재전송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받은 사람이 얼마든지 복사든 다운로드든 할 수 있었을 텐데 다시 받은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말했다.
임기 말 청와대가 국가 운영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민감한 자료를 아무런 보안장치가 없는 외장하드로 제출하고 받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진흥원 관계자는 “청와대 측에서 처음부터 외장하드에 넣어 달라고 했다”며 “돌려준다는 얘기는 없었고 돌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재단은 참여정부 역점사업인 전자정부 사업이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자정부 사업 산출물 현황을 받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전자정부시스템은 인터넷망과 분리된 내부 업무망으로 외부 접속이 불가능한 만큼 ‘보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정보보안시스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전자정부시스템 설계도라는 극비자료를 복사 또는 로그 기록이 아예 남지 않는 외장하드에 담아 보낸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료가 돌고 돌아 1%라도 불순세력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면 국가 전자정부시스템 전체를 다시 구축해야 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 문재인 비서실장 직인 찍힌 공문도 사라져
진흥원이 청와대에 자료를 제출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된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직인이 찍힌 청와대의 협조공문이 사라진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이 이날 공개한 진흥원 내부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은 문제의 청와대의 협조공문을 보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진흥원은 2008년 1월 초 대통령업무혁신비서관실에서 유선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국가 보안’을 내세워 난색을 표했다. 결국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직인이 찍힌 협조공문이 도착한 뒤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진흥원은 논란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자 뒤늦게 2008년 1월 8일 청와대가 보낸 협조공문 확보에 나섰다. 내부적으로 이 문서를 찾지 못한 진흥원은 4일 대통령기록관에 ‘전자정부로드맵 과제 산출물 협조 요청(업무혁신비서관실-7 08.1.8)’ 문서의 열람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통령기록관은 6일 “(위) 문서는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에 보존·관리하고 있지 않는 기록물로 제공해 드릴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노무현재단 측은 진흥원 자료를 요청했던 경위에 대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전자문서(이지원)로 결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이지원 시스템으로 결재된 모든 문서는 삭제가 불가능하고 이 기록들은 전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다”는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사건에 이어 또다시 이지원의 문서 실종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진흥원은 “당시 조직개편에 따른 인사이동으로 문서 수신업무 담당자가 공석이었던 상황이라 청와대가 보낸 협조공문 등록이 누락된 것으로 추측된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 여 “檢 수사해야” vs 盧 측 “자료유출 근거 無”
사건이 점점 미궁에 빠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새누리당은 검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무현재단은 논평을 내고 “자료가 유출됐다는 근거는 전혀 없고 그로 인해 생긴 문제도 없다”고 반박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노무현 정부와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이 국가의 전자정부시스템 정보까지 사유물화했음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 자료가 외부 불순세력에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가정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당시 진흥원 측이 국가시스템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합리적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는데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나서 (다시) 요청한 배경이 의심스럽다”며 “검찰은 유출 과정 전반에 대해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무현재단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자료가 유출됐다는 근거는 전혀 없고, 그로 인해 생긴 문제는 아예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진흥원과의 협의를 통해 민감한 소스코드를 제외한 산출물을 받았고 이를 참고한 후 돌려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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