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이 방한하려면 사죄부터 하라’고 말한 것이 한일관계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 아니냐고 하더라. 깜짝 놀랐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정부 관계자는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을 바라보는 보통 일본 사람의 정서를 이같이 전했다. 복수의 주한 일본 특파원도 이런 분위기가 틀리지 않다고 답했다.
일본의 강경 우파 언론과 정치인은 일본 내 일부 반한(反韓)감정에 기름을 붓곤 한다. 강경 보수 성향의 슈칸분슌(週刊文春)은 14일 “아베 신조 총리가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국가임에도 아직 이성적인 외교 게임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라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 근거는 ‘아베 총리 주변의 소식통’이다. 또 이 주간지는 “한 외교소식통은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간신(奸臣)이 있기 때문이고 그 필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라고 헐뜯었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아베 총리 측근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거론하는 한국에 대한 금융제재를 검토하고 있다”며 새로운 차원의 ‘정한(征韓·한국 정복) 전략’까지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관계자는 “몰상식한 보도”라고 일축했다.
살얼음판 같은 한일 관계는 이런 몰이해와 몰상식이 계속되면서 빙하기(氷河期)를 맞고 있다. 그러나 양국의 양식 있는 시민사회에서는 “한일 관계,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한일 정부에서도 접점을 찾으려는 물밑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 떼려야 뗄 수 없는 의존 관계
한일은 안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서로 필요하다. 평시에 주한미군은 주일미군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한반도 유사시에는 일본이 주한, 주일미군을 지원하는 핵심기지가 된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없다면 미군은 괌이나 하와이에서 한반도로 진격해야 한다”며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란 이중장치가 북한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은 한국의 2대 교역국이고, 한국은 일본의 3대 교역국이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 1250만 명(2013년도 예상치) 가운데 약 3분의 1인 400만 명이 일본인이다. 또 올해 상반기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132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양국 정부 안팎에서 “경제·문화적인 교류를 지속하면서 정치·외교적인 관계 개선도 시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긴밀성이 깔려 있다. ○ ‘단호한 대응’-‘실리적 대처’ 구분하는 지혜 필요
박 대통령은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함께 열어갈 중요한 이웃”이라고 말했다. 3·1절 경축사에는 없던 표현이다. 그만큼 ‘일본의 태도변화를 기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양국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 1차 책임은 박 대통령의 요청에 화답하지 않는 일본 정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일본의 극적인 변화를 마냥 기다리기만 할 것이냐”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상회담 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각료급 회담도 성과를 내지 못한 만큼 실무 차원의 다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외교적 난제 해결을 위한 구심점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만큼 접촉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사문제도 사안별로 성격이 다른 만큼 분리 대응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조세영 동서대 교수(전 외교부 동북아국장)는 “강제징용자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 체결 때 ‘한국 정부가 일괄 처리하겠다’고 합의한 만큼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군 위안부는 청구권에 포함되지 않았고 일본이 양자협의에도 응하지 않는 만큼 중재위원회에 회부해서라도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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