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의 핵심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해야 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인 박창신 원로신부는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와 여당은 정의구현사제단이 올해 내내 국가정보원 댓글 논란, 경남 밀양 송전탑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시국미사를 할 때도 종교 행사이기 때문에 반응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정의구현사제단의 전북 지역 일부 신부들이 대통령 하야 미사까지 진행하자 “성직의 뒤에 숨어 도를 넘는 선동을 하고 있다”며 폭발하는 분위기다. ○ “박근혜 퇴진하라” 외치며 행진도
이날 미사는 오후 7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대표인 송년홍 신부의 집전으로 진행됐다. 30여 명의 신부가 참석했고 200여 명(경찰 추산)의 신도가 성당을 채웠다.
신부들은 “이미 환하게 켜진 진실을 그릇이나 침상 밑에 둘 수는 없다”(루카 8장 중)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박 대통령은 사퇴를 표명하라”고 요구했다. 또 “이 사태의 직접적이고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은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청와대 뒤에 앉아서 국민과 대화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은 하지도 않았다”고 비난했다. 미사 뒷부분에는 신부들이 모두 앞으로 나가 “부정 불법 선거 규탄한다” “대통령 사퇴하라” 등 구호를 외쳤고 신도들이 따라 외쳤다. 일부 신도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호응하기도 했다. 미사를 마친 뒤 이들은 촛불을 들고 800m 정도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전주와 익산 정읍 등을 돌며 시국미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저는 이제 더이상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 여권, “시대착오적 소수 사제들의 망상”
여권에서는 야당 의원들의 귀태(鬼胎·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막말이나 북한의 ‘사타구니를 맴도는 삽살개’ 등 저질 비난에 이어 일부 종교인이 박 대통령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대통령을 인정하기 싫은 본색이 드러났다”며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지금이 유신독재시대와 같다고 비판하는데 스스로 유신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시대착오적인 소수 사제들의 망상에 대해 국민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야권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하는데 국민의 투표로 뽑힌 대통령이 사퇴하기를 기도하는 미사를 여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인가”라며 “국민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 동네북인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선불복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오죽하면 천주교 사제들까지 나서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시국미사를 하는지 박 대통령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천주교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한 관계자는 “전주 쪽 일이지만 신부님들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항의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신부는 “사퇴 촉구 미사를 가톨릭 전체의 분위기로 봐서는 안 된다. 전주교구의 일부 사제가 거리로 무리하게 나선 것”이라며 “정치적 발언을 하려면 사제복을 벗고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미사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옳지 않다”고 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일부 사제가 사제의 신분을 악용해 정치적 언행을 하고 있다. 교회의 본질을 폄훼하는 정치선동은 즉각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