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의 파편이 종교계에까지 튀자 ‘수습 불능’ 상태에 들어섰다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교훈은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우리나라 지도층의 갈등해결 능력은 마비됐다는 무기력감이다.
‘럭비공’처럼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우리 사회의 어떤 세력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승자는 없고 패자뿐이었다.
정치가 수습을 못하자 최대 정보·권력기관인 국정원과 군, 이 건을 수사하는 검찰, 이념적으로 나뉘어 있는 시민단체, 종교계까지 서로를 비난하고 내부 분열마저 겪고 있다.
국정원 댓글 수사 특검과 국정원 개혁 특위 구성을 두고 여야 간에 한 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과 야당 사이에 불신의 벽은 어느 때보다 두껍다. 정치적으로 풀리지 않는 해법은 상호 간에 고소, 고발 법적 문제로 넘어가 있지만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또 그 결과에 수긍할지도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사회의 불신과 대결의 문화가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국력의 낭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의 바른 말씀’에도 슬슬 지쳐가고 있다. “정치적 대타협으로 이 문제를 끝맺고 내년에는 제발 댓글 얘기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 댓글 사건, 럭비공에서 블랙홀로
국정원 댓글 사건은 몇 차례 시도했던 정치적 해법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각종 권력기관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하나씩 블랙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과 대립은 정치권에서 풀어야 되는데 제몫을 못하니까 종교단체와 시민단체가 덤벼든 꼴”이라며 “일 년 내내 생산적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사건 초기에 전임 정권 일이라며 애써 모른 척 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결국 박 대통령이 “의혹들에 대해 반드시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야 했다. 9월부터 내놓겠다던 국정원 개혁안은 오리무중이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대통령 사과와 국정원 국내파트 폐지라는, 현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내걸더니 지금은 수사 중인 상황에 대해 특검을 주장하면서 사태를 장기화시켰다. 새누리당은 타협 접점을 전혀 찾지 못하더니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국정원 개혁을 국회에서 잘 논의해달라”고 말하자 그날 당일 곧바로 민주당이 주장한 국정원 개혁안 특위를 수용할 정도로 청와대 눈치만 볼 뿐 무기력하다.
국정원은 “최고의 권력기관이 책상 앞에 앉아서 한심한 댓글이나 달고 있다”는 비아냥을 받는다. 그래서 공안 수사에 성과를 내고 있지만 오히려 이 건을 덮기 위해 공안 정국을 주도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수사 도중에 지휘라인 간의 다툼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박창신 신부의 지난주 발언으로 종북 논란에 이어 종교의 정치개입 문제까지 전방위적으로 이슈는 커지고 있다.
○ 입으로 망친 정치, 듣는 귀로 풀어야
이 문제를 수습할 길도 보이지 않지만 수습되더라도 사회에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회의 때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된 발언에 대해 “분열을 부르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이들에게 할 말을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오히려 사회 공안 분위기만 형성하고 상대를 자극해 문제만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대선 불복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일부 종교단체도 자중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동국대 박명호 교수는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카운터파트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존중은 있어야 한다. 법보다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은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 미사 때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 마지막에 “들을 귀가 있는 대통령은 들어라”고 외쳤다. 이제부터라도 내 입은 닫고,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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