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전 국무총리(사진)의 ‘국회 해산’ 발언이 묘한 파장을 부르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입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과거 헌법상에 조문으로 존재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사라진 ‘초헌법적 발상’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여론이 조금씩 퍼지고 있다.
김 전 총리는 28일 국회 초청강연 질의응답에서 “우리 헌법에 왜 국회 해산 제도가 없는지 모르겠다”며 “국회 해산 제도가 있었으면 (지금이) 국회를 해산시키고 다시 국민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과거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부여했다. 유신헌법은 제59조에서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고 했다. 5공화국 헌법에서도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명시했다. 그러나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민주화선언을 거치며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공화국 헌법으로 개정할 때 국회해산권을 폐지했다. 대통령(정부)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물론 영국, 일본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도 국회(의회)해산권은 존재하지만 이 나라들의 권력구조는 의원들이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책임제라는 점이 다르다.
민주주의 체제의 강화를 위해 폐지했던 국회해산권을 절차적 민주주의가 사실상 확립된 현재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것은 역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여권의 서울시장 후보 물망에 오른 전임 총리가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계산이 담겼다는 의구심도 제기되지만, 국회 해산 발언에 호응하는 민심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감의 발로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국회가 기능을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국회를 해산한다는 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의원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치를 한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한 블로그는 “전직 총리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나도 그 마음에 동의한다. 국민의 뜻에 따라 해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저런 끔찍한 얘기를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게 현 상황의 비정상성을 보여 주죠”라고 비판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도 트위터에서 “지난 몇십 년간의 민주 헌정의 발전을 깡그리 후퇴시키는 수준의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도 “박정희 유신 독재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며 반박했다. 배재정 대변인은 이날 현안 브리핑에서 “몰역사적이고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발언을 대법관까지 한 전직 총리가 했다는 사실이 어이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중진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타협 없이 오만 불통이고, 여당은 청와대 눈치만 보며, 야당은 시시비비 가리지 않고 모든 걸 부정하고 있다”며 “국회가 신망을 잃어 해산해야 할 정도라고 국민이 생각하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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