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격적인 ‘장성택 숙청’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유일지배체제가 공고화되는 모양새이지만 권력 구도를 흔들 수 있는 각종 억측과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밑에 잠겨 있던 북한 내부의 동요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확산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 관계에도 당분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 ‘장성택 라인’의 연쇄 망명 시도 가능성
북-중 접경지역 등지의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장성택의 최측근이 해외로 망명했다는 설이 퍼지고 있다. 북한 탈출을 시도한 고위 인사가 노동당 행정부 소속으로 인민군 상장이라는 식의 구체적인 신상 관련 정보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측근 망명설에 대해 “그런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라인의 한 당국자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는 게 없다”면서도 “피의 숙청이 예고된 상황에서 위협을 느낀 인사가 망명을 시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장성택의 측근들이 11월 초중순경 평양 보통강 인근에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각에서 파티를 벌이며 “장성택 만세” “만수무강” 등의 구호를 외친 것이 숙청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미 처형된 이용하와 장수길을 비롯해 이 파티에 참석한 장성택의 측근은 25명에 달한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살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암투가 심화되거나 내부의 중요 기밀들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내부 동요를 우려한 듯 북한도 장성택의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10일 노동신문에 등장한 주민들은 장성택을 ‘쥐새끼 무리’ ‘인간오작품(불량품)’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은 또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강화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만 썼던 ‘위대한 영도자’라는 호칭을 최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북한은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 김정일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에 대해서는 ‘경애하는 원수님’으로 구분해 불러 왔다.
○ 온건파 장성택 숙청은 남북 관계에도 악재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의 전자출입체계(RFID) 도입 공사는 11일부터 예정대로 시작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RFID 공사 협의나 군 통신 분야 등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현재로서는 원만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북한의 대남 정책은 더 강경해질 개연성이 크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게재한 전면 사설에서 “장성택 일당은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 책동에 편승한 만고의 역적무리”라며 ‘적대세력’을 언급했다. 북한 매체의 기존 논조로 볼 때 대외적으로 한국이나 미국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내부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당장 급격한 대남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장성택 숙청 이후 후속 조치들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대남 긴장 분위기를 조성할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년에는 미중 관계도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개연성이 있어 정부가 대북 전략을 운영할 여지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2월 3차 핵실험을 반대한 대표적 인물인 장성택이 제거되면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북한 내 브레이크’가 사실상 사라진 점도 남북 관계를 어렵게 만들 요인 중 하나다. 장성택은 당시 “이미 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핵실험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만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폈던 것으로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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