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 첫해 추진한 주요 경제정책을 두고 기업들은 방향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추진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10∼13일 205개 기업(대기업 54개, 중소기업 151개)을 대상으로 ‘박근혜노믹스’를 대표하는 경제정책의 방향성에 동의하는지, 잘 추진되고 있다고 보는지를 물었다. 경제정책으로는 국정과제 등을 감안해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경제활성화 △민생경제 △고용노사 등 5개를 정했다.
기업들은 정책의 방향성에 3.19점(5점 만점)을 줬다. 추진 속도는 5점 만점에 2.71점을 얻는 데 그쳐 ‘보통(3점)’에도 못 미쳤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아직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민생경제, 창조경제에 ‘동의’ 많아
방향성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정책은 민생경제(3.30점)였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교육비와 주거 부담을 낮추겠다는 정책에 동의하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창조경제도 3.25점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경제민주화는 3.11점에 그쳐 기업들이 가장 동의하지 않는 경제정책으로 꼽혔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이 더 낮은 점수를 줬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보호,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내세운 경제민주화 정책이 중소기업들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은 정부의 고용노사 정책에도 낮은 점수(3.12점)를 줬다. 노동유연성 제고 등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 대신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기업에 부담이 되는 정책들만 쏟아지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 새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창조경제 등을 보면 정책의 방향성은 잘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고용노사 정책 “제대로 추진 안돼”
기업들이 추진 속도에서 ‘보통’ 이상의 점수를 준 경제정책은 하나도 없었다. 당선인 시절 “3개월, 6개월 안에 (공약 이행을) 거의 다 하겠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며 속도를 강조했던 박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고용노사 정책은 2.57점으로 5개 경제정책 중 점수가 가장 낮았다. ‘잘 추진된다’ 또는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다’는 응답은 6.3%에 불과했다. 선거 기간 내세웠던 노사정 대타협이 지지부진하고 고용 관련 정책들도 노사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바람에 제대로 추진할 수 없었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노동계 핵심 이슈가 올해 유난히 많이 분출됐다”며 “특히 통상임금의 경우 고용노동부 지침을 따랐던 기업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생기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박근혜 정부의 목표인 ‘고용률 70%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평가했다.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또는 어느 정도 높다’는 응답은 5.9%에 그쳤다.
경제민주화(2.61점)와 창조경제(2.66점)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잘 추진되고 있다’거나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경제민주화 11.7%, 창조경제 16.6%였다. 특히 창조경제는 방향성과 추진 속도의 점수 간극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 관계자는 “창조경제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말만 무성하지 개념이 모호하고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진행되는 게 없는 탓”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활성화 정책의 추진 속도에 대한 평가는 2.97점으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손톱 밑 가시’ 제거를 시작으로 규제 완화, 무역투자진흥회의 등을 통한 투자 유도 정책이 어느 정도 가시화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성과 내려면 ‘선택과 집중’ 필요
기업들이 박근혜노믹스의 방향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추진 상황을 ‘기대 이하’로 평가한 것은 그만큼 정책 목표와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야의 극한 대립, 글로벌 경기침체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적시에 경제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내부 요인 영향도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정책 효과를 거두려면 박근혜노믹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관련 정책에 힘을 실어 추진하면 고용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에 경제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대선공약 또는 국정과제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다 하기보다는 시급한 과제 위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치권과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정권 초기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라는 상충되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메시지가 모호해진 측면이 있다”며 “내년에는 민생경제와 경제활성화에 초점을 맞춰 필요한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면서 입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이해와 설득을 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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