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1년 내내 ‘남북관계 비정상화의 정상화’에 매달렸다. 정부는 출범 초기 북한의 고강도 위협에 맞서 대북 억지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원칙과 신뢰’로 대응했다. 국민은 이런 ‘당당한’ 대북 대응에 많은 지지를 보냈고 그것은 폐쇄 직전에 몰렸던 개성공단이 133일 만에 정상화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완전한 복원은 이뤄지지 못했고 이달 12일 ‘북한 2인자’ 장성택의 전격적인 처형으로 다시 불확실성과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이다.
○ 원칙과 신뢰의 성과물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반발해 군 통신선을 절단한 뒤 개성공단의 통행을 일방적으로 차단했던 북한은 ⑤ 현충일(6월 6일)을 맞아 남북 당국 간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조용히 “원칙의 승리”라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뚝심이 얻어낸 성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원칙이 이긴다는 자신감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1년을 관통한 키워드가 됐다. 그것이 남북관계의 비정상화를 정상화하고 신뢰를 쌓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화로 돌아선 것은 박 대통령의 ④ 3차례 대화 제의(4월 11일과 25일, 5월 14일)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강하다. 북한도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③ 5월 3일 개성공단 잔류인원의 전원 철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른바 ‘최후의 7인’의 귀환으로 2004년 공단 가동 이래 개성에 남한 사람이 한 명도 체류하지 않게 된 그날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그런 비정상적 상태로는 개성공단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의 결과였다”고 말했다. ⑧ 8월 14일의 개성공단 실무회담 타결까지는 진통이 컸다. 개성공단이 ‘죽었다가 살아나기’까지는 133일이나 걸렸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한미 정상회담과 ⑦ 한중 정상회담(6월 30일)을 거치면서 그 틀을 분명히 했다. 북핵 불용과 추가적인 핵무기 개발 반대라는 메시지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분명해졌고 북한에 대한 압박 역시 커졌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고 당당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할 때마다 국민의 지지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결국 개성공단 문제 등에서 북한의 변화를 이끈 건 이런 남한 민심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 아쉽고 안타까운 장면들
⑥ 어렵게 합의된 남북 당국 간 회담이 격(格)의 문제로 틀어져버린 것(6월 11일)은 지난 1년간 남북관계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이란 평가가 나온다. 남북은 6년 만의 장관급 회담에 합의했지만 남한 통일부 장관의 상대는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이라는 남측 주장에 북한이 난색을 표하면서 6월 12일로 예정된 회담이 취소됐다. 격을 맞추는 것은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실무회담에서 이 문제를 미숙하게 다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⑨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행사 나흘 전인 9월 21일 무산됐다. 북한 몽니의 이면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금강산관광 재개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협상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북쪽 관계자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두 번이나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응했지만 남쪽은 금강산관광 재개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또 당할 것 같으냐’며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주도권이 청와대와 국가안보실에만 편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가 남북관계 주무부처로서의 역할을 못했고 류길재 장관 역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 원인(遠因)을 ① 최대석 전 인수위원의 급작스러운 낙마(1월 14일)에서 찾는 전문가들도 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 직전 ② 3차 핵실험(2월 12일)으로 도발하며 남북관계를 시험대에 올렸다. 박근혜 정부가 김정은 체제에 선의를 갖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터진 ⑩ 장성택의 처형(12월 12일)은 남북관계에 근본적인 의문점을 다시 던지고 있다. 대남총책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건재하지만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은 높아지고 있어 남북관계도 화해와 협력보다 갈등과 긴장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다시 커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돌고 돌아 제자리에 선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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