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대한주택공사(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통합해 LH로 출범),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공항공사 등 주요 공기업의 전직 최고경영자(CEO)들은 공기업 개혁의 핵심 키워드로 ‘직원 설득’과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꼽았다.
이들은 “인력 감축에만 초점을 맞춘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공기업을 개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 안정성이 가장 큰 관심사인 공기업 직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면 개혁 자체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개혁 대상이자 주체인 직원들을 계속 설득해 방만 경영 요소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안정적인 고용과 수익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 직원 설득해야 개혁 동력 생긴다
성시철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2009년 수십 차례 지방 출장을 다녔다. 임금을 깎지 않고는 공기업 평가에서 꼴찌를 면하기 어렵다는 걸 일선 직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임금 삭감 시 기대 효과를 정리한 ‘표’까지 만들어 돌렸다. 인원이 많은 지방 지사는 여러 번 내려가 직군별, 입사연도별로 직원들을 만났다.
처음에 반발하던 직원들도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게 심각하냐”고 되묻기도 했다. 직원 여론은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흘렀고 노조도 받아들였다. 이후 노사는 6.8% 임금 삭감에 합의했고, 임금단체협상 조항도 127개에서 72개로 간소화했다.
그해 공항공사는 공기업 평가에서 ‘B’를 받아 전년도(C)보다 등급이 올랐다. 3년 뒤인 2012년에는 최고 등급인 ‘S’를 받았다. 성 전 사장은 “모든 직원을 직접 설득하니 성과가 나왔고, 다른 개혁을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며 “그때부터 노조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례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최재덕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은 취임 초 각종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노사 이면합의가 많은 것에 크게 놀랐다. 이면합의는 주로 직원 복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최근 코레일 파업 사태 때 드러난 것처럼 사기업에선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복지 조항이었다.
그는 “이런 이면합의들은 노조 반발을 피하려고 경영진이 타협한 것이었다. 책임감을 가지고 직원들을 계속 설득했으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사장은 “직원들이 ‘방만 경영을 개선하는 게 길게 보면 이득’이라는 인식을 가지면 노조가 무리하게 이면합의를 내세우는 관행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미래 먹거리’ 찾아야
현재 사업 구조로는 수익 창출이 한계에 이르렀으므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전직 CEO도 많았다.
민영화해야 할 공기업은 아무리 반발이 심하더라도 민영화하고, 공기업으로 유지해야 할 곳은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해외시장 진출을 답으로 꼽은 CEO도 많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09년 이라크 아르빌 신공항을 시작으로 필리핀,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공항운영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 따라 매년 수십 명의 직원을 해외로 파견했다. 그만큼 인력을 더 뽑을 수 있었고 회사 수익도 늘었다.
이채욱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처음에는 ‘왜 해외로 나가야 하느냐’며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직원들이 해외에서 성과가 나고 일자리와 수익이 늘어나는 것을 보자 해외 진출을 반겼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면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중겸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도 해외시장 진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국내 공기업들의 인력과 기술은 해외시장에서 충분히 통한다”며 “해외에 적극적으로 나가면 인력 감축 없이도 국내 사업 비중을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기업이 성장동력을 찾으려면 현실 안주에 급급한 직원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영철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은 “공기업 직원들은 제대로 부딪혀 보지도 않고 ‘법이나 규정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이런 구조에선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 현실 반영한 요금제도 필요
공기업의 과도한 부채를 줄이려면 비현실적인 사업과 요금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오강현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많은 공기업이 임직원 임금 삭감 같은 단순 조치로는 적자를 줄이기 어렵다”며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한 요금 제도를 도입하는 게 공기업 부실이란 더 큰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최재덕 전 사장도 “국민임대주택처럼 막대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사업 탓에 발생한 손실은 구성원들의 방만 경영 근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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