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해 바뀌자 돌연 평화공세… 진정성 의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일 03시 00분


[김정은, 남북관계 개선 강조]
“비방 중단” 신년사 속셈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1일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 한국 정부는 ‘평화 공세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정부 관계자는 “(신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을 자제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북한이 남북 당국 간 대화 전격 제의 등 평화 공세로 나올 것에 대비해 정부 차원의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 김정은 대남 평화 공세의 3대 속셈

북한은 지난해 12월만 해도 각종 통로를 통해 대남 위협 발언의 수위를 높여 왔다. 박 대통령을 ‘박근혜’라고 지칭하면서 “치마 두른 청와대 안방 주인의 대결 광기”라는 말폭탄을 쏟아냈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대한 이런 저급한 비난 표현이 사라졌다.

그간 신년사에서 빠지지 않았던 6·15 및 10·4 공동선언을 이번엔 적시하지 않은 대신 박 대통령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7·4남북공동성명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언급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런 평화 공세의 배경을 3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김정은이 자신만의 정치 업적 어젠다로 ‘남북 관계 개선’을 들고나온 것 같다는 시각이 있다. 아버지 김정일도 집권 초기인 1990년대 말 북-미 관계 개선을 차별화된 정치도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장성택 숙청 이후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설 정도로 권력지도부가 안정됐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셋째, 북-미 관계 악화에 이어 북-중 관계까지 날로 나빠지는 고립 상황을 남북 관계 개선으로 탈피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정부는 특히 신년사 중 “백해무익한 비방 중상을 끝낼 때가 됐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존엄모독’이라고 주장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여러 비판으로 인한 체제 이완, 주민 동요를 심각하게 우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상호 비방 중상 금지와 관련한 당국 간 대화를 제의해 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 지난해 없던 대미 위협은 재등장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상 비방을 끝내자고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이 군사적 신뢰 구축 대화를 제의한 뒤 실제로는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을 요구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권력지도부의 이런 우려는 신년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김정은은 “제도를 좀먹는 이색적인 사상과 퇴폐적인 풍조를 쓸어버리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이 벌여 적들의 사상문화적 침투 책동을 단호히 짓부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 내 관료, 군 등 각계각층의 비리와 이탈이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화 공세를 취함으로써 직접적인 대남 군사적 도발 가능성은 낮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정부 일각에서 나왔다. 하지만 평화 공세와 별도로 긴장 조성에도 나설 개연성이 적지 않다. 소형화한 핵탄두를 장거리미사일에 탑재해 실전배치할 능력을 보유했다고 위협하면서 새로운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신년사에 없었던 대미 위협(“전쟁으로 엄청난 핵재난 오면 미국도 결코 무사하지 못해”)이 등장한 점이 주목된다.

한편 김정은은 1일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관심과 논란의 대상인 부인 이설주와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김정은#남북관계 개선#비방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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