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싫어요. 무서워요. 나중에 커서도 절대로 안 갈 거예요….” 영국 뉴몰든 지역에 사는 신현지(가명·10) 양을 비롯해 이 지역에 정착한 탈북자 부모의 자녀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탈북한 후 한국 국적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영국에서 난민 신청을 한 부모들이 아이들의 머리에 주입한 가짜 기억이다. 만들어진 기억 속 북한은 그저 끔찍하다.
북한의 실상을 직접 경험한 탈북 청소년들에게도 그 기억은 지우고 싶은 어두운 과거다.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조은혜 씨(23·여)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신 후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4세 남동생을 남겨 놓고 두만강을 건너야 했다.
참혹한 북한의 실상이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아이들도 있다. 북-중 접경지역의 꽃제비들은 여전히 굶주림과 공안당국의 단속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북한 어린이들은 통일된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어갈 차세대 주역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북한 내의 대표적인 취약계층으로 영양 부족과 이로 인한 발달장애, 교육 기회 박탈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엄마 아빠를 따라 북한을 탈출한 뒤에도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떠나거나 제3국에서 떠돌며 낯선 환경과 마주해야 한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들 같은 ‘제3국의 북녘 어린이’에게도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럽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단체인 재유럽조선총연합회의 김주일 사무총장은 “통일한국에서 활약할 미래 인재를 만들려면 기본적인 영양과 교육 지원은 물론이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교육부터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이 되레 반통일 세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다.
동아일보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탈북 고아들이 모여드는 북-중 접경지대와 유럽에서 가장 많은 탈북자들이 정착한 영국, 탈북아동입양법을 통과시킨 미국을 현지 취재했다. 이번 기획은 동아일보가 지난해 5월 ‘굶주리는 북녘’과 10월 ‘북녘의 숨겨진 굶주림’에 이은 북한 어린이 관련 3부 시리즈이기도 하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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