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촉법-예산안 통과 이후]
일자리-농가 지원 ‘무리한 감액’
지역 국도-전철은 ‘정치적 증액’
올해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주는 사회보험료 예산이 지난해 말 국회 심사 과정에서 15% 삭감된 반면 지역의 국도건설사업은 대폭 증가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사업을 줄인 반면 지역사업을 늘리는 ‘정치적 거래’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지난해 말 정부 제출 예산안(357조7000억 원)에서 5조4000억 원을 감액하고 3조5000억 원을 증액해 최종적으로 1조9000억 원이 줄어든 355조8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확정했다.
동아일보가 5일 2014년도 예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회 예산안 심사 때 삭감된 예산 5조4000억 원 중에는 일자리 창출과 농가 지원 등 국민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업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일례로 정부는 당초 올해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기업에 대해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보험료 중 기업 부담액을 대신 내주기로 하고 1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시간선택제로 입사하는 사람이 3만7000명 정도 될 것으로 보고 1인당 27만 원꼴로 보험료를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회에선 시간선택제로 그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예산을 15억 원 줄였다. 이에 따라 사회보험료 지원 대상이 5000명 이상 감소하게 됐다.
사회초년생들이 영어점수나 학점 같은 ‘스펙’에 얽매이지 않고 취업하도록 돕는 스펙초월채용시스템 지원예산은 원래 규모(47억 원)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사업은 멘토스쿨이라는 기관을 통해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멘토와 사회초년생들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국회는 운영기관을 너무 많이 지정하면 부실이 생길 수 있다며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창직인턴’ 제도는 정보기술(IT) 디자인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창업하려는 청년들이 현장 경험을 쌓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인턴을 고용하는 기업에 임금의 절반을 월 80만 원 한도로 지원한다. 정부는 현장 경험을 충분히 쌓으려면 인턴기간이 5개월은 돼야 한다고 보고 100억 원을 편성했지만 국회에선 사업의 성과가 미진하다며 10억 원을 깎았다.
홍수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 농가를 지원하는 재해대책비는 지방자치단체 지원금과 융자금을 합해 총 2400억 원 규모로 정부 예산안에 반영돼 있었다. 지난해 큰 재해가 없어서 지출이 별로 없었다는 이유로 국회는 총 600억 원을 삭감했다.
국회는 이렇게 삭감된 예산이 5조4000억 원으로 증액 예산 3조5000억 원보다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에서 군살을 뺀 뒤 감액 규모 범위 내에서 지역예산을 늘린 만큼 국가사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증액사업의 면면을 보면 과연 꼭 필요한 사업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하고 있다. 증액된 예산에는 정부안에 없던 국도, 국지도, 전철사업 등이 대거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국도 증액사업만 전국 10개 지역 114억 원 규모에 이른다. 이런 ‘끼워 넣기’식 도로사업이 늘면 중장기적으로 국가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큰 틀이 어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국회의원들은 국회 관련 예산을 여러 분야에서 늘렸다. 사업별로 한일의원연맹 지원에 1억 원, 한중의원외교협의회 지원에 1억 원, 한국의정여성포럼 지원에 1억 원, 한일친선협회 사업에 5000만 원 등이다. 양국 간 현안 해결, 교류 강화, 정치인 역량강화, 미래협력 등을 증액 사유로 들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문적 지식과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예산안을 심사하다 보니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예산정책처의 예산안 분석 결과가 실제 감액 및 증액심사 과정에 반영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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