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교육지원청과 서초구청을 담당한 국가정보원 정보관 송모 씨가 유영환 강남교육장을 통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관련 개인정보를 수집하려 한 것은 국정원의 합법적인 정보 수집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해명 자료를 통해 “해당 정보관이 혼외자 소문을 듣고 유 교육장에게 개인적으로 문의한 것이며 유 교육장에게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해명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송 씨처럼 국정원 직원이 국가안보와 관계없는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려 시도하거나 수집한 사안에 대해 그동안 법원은 직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려왔다.
2006년 17대 대통령선거의 한나라당 유력 후보였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주변을 조사한 혐의(국정원법 위반 등)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고모 씨 판결문에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드러나 있다. 고 씨는 2006년 8∼11월 경찰청, 법무부, 건설교통부 등 국가기관을 동원해 이 후보 친인척의 토지 및 주택 소유 현황 등 132명의 개인정보 563건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법원은 판결문에서 “정치인이나 공직자에 대한 비리 수사 및 정보 수집은 직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송 씨가 유 교육장을 통해 문의한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소문’이 채 전 총장의 비위에 포함된다 해도 국정원법이 정한 직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판결문에 따르면 국정원은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정책정보’와 ‘정무정보’로 구분하고 있다. 정책정보는 국가안보나 외교·군사와 관련된 포괄적 정보이고, 정무정보는 정치권에서 빚어지는 국익·안보 관련 사항에 대한 위기 징후를 포착하기 위한 정보를 말한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있는 채모 군의 생활기록부 정보는 정책정보와 정무정보 어느 쪽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2005년 국정원이 작성한 제이유그룹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 보고서 사건도 마찬가지다.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의 비리 정보를 수집한 국정원 내부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주 회장은 사기 등의 혐의로 2007년 10월 징역 12년형이 확정됐다. 주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보고서 내용 중 뇌물 공여 등 일부 혐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자 국가(국정원)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당시 국정원이 개인이나 기업의 비리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행위는 위법하다며 국가와 언론사가 각각 1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업의 사기, 횡령, 뇌물공여 등 비리에 대한 수사는 검찰 경찰의 직무이지 국정원 직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송 씨가 채 군에 대한 정보 수집 행위를 상부에 보고했는지, 윗선의 지시를 받았는지도 관심사다. 국정원 직원 고 씨 사건 항소심에서도 결재권자의 승인을 받는 등 적법한 내부 절차를 거쳤는지가 쟁점이 됐다. 당시 고 씨가 정보열람 과정에서 상부의 공식 결재를 받거나 보고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법원은 “적법한 업무 절차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현재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서는 국정원 직원의 직무 범위와 정보관의 정보 수집 활동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두고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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