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서청원 의원(7선)과 이재오 의원(5선)이 8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정면충돌했다. 당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와 비주류인 친이(친이명박)계 좌장이 개헌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인 것이다. 개헌은 친박-친이의 오랜 악연이 얽힌 이슈였다. 이명박 정부는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친박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갑을(甲乙) 관계’가 뒤바뀐 셈이다.
○ “정치개혁은 개헌” vs “무슨 개헌이냐”
이 의원이 선제공격에 나섰다. 이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작심한 듯 “개헌 문제는 대통령께서 블랙홀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개헌 논의 주체 등의 지혜와 능력에 따라 블랙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논의에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을 겨냥한 것. 그는 “정치개혁의 첫째는 ‘개헌’이다. 2년 차에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개혁은 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서 의원은 발끈했다. 이 의원의 발언 도중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재원 의원에게 “무슨 개헌이냐. 왜 저런 말을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서 의원은 즉각 예정에 없던 발언을 자청했다. 이 의원의 정치적 위상을 감안할 때 직접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서 의원은 “이명박 정권 때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 산하에 개헌특위를 만들었다. 이 의원은 당시 모든 언론에서 ‘이명박 정권 2인자’라고 불릴 만큼 힘이 있었으면서 개헌을 못하지 않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지금 우리는 개헌보다는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를 살리는 데 우선적으로 과제를 둬야 한다”고 맞받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황우여 대표가 나섰다. 황 대표는 “오랜만에 중진들께서 무게감 있는 말로 회의를 이끌어 주셨다”며 부랴부랴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하지만 비공개 회의에서도 서 의원은 이 의원을 향해 “개헌이 쉬운 것이냐. 해봐서 알지 않느냐. 일단 지금은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고 그 다음에 개헌 논의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고, 이 의원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 것으로 전해졌다.
○ 절친한 인연에서 등 돌린 악연으로
서 의원은 이 의원의 중앙대 2년 선배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도우며 같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서 의원이 2005년 중앙대 총동문회장 선거에서 유용태 전 의원을 추천하고 이 의원에게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 의원은 이를 거절한 뒤 선거에 나갔다가 패하면서 사이가 서먹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두 사람은 결정적으로 갈라섰다. 서 의원과 이 의원은 각각 박근혜, 이명박 후보 캠프를 진두지휘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2008년 4월 총선에선 친이계의 친박계 ‘공천 학살’ 논란이 있었고, 서 의원은 탈당한 뒤 ‘친박연대’를 구성해 친박의 구심점을 만들었다.
두 의원은 지난해 9월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의 모친상에 문상을 가려고 비행기를 탔다가 앞뒤 자리에 앉게 된 것을 계기로 같은 달 오찬을 하기도 했다. 또 서 의원이 지난해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뒤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나란히 앉게 되자 구원이 풀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정치적 노선 차이는 쉽게 풀리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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