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는 가족 살리려 국경 넘었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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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과정 인신매매… 꽃제비 출신 30대 여성

‘꽃제비’ 출신 탈북 여성 박모 씨(왼쪽)가 중국에서 낳은 아이(4)에게 밥을 떠먹이고 있다.
‘꽃제비’ 출신 탈북 여성 박모 씨(왼쪽)가 중국에서 낳은 아이(4)에게 밥을 떠먹이고 있다.
“집에 먹을 게 없어 방랑생활을 했습니다. 꽃제비 생활을 한 겁니다.”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뒤 중국에서 살고 있는 박모 씨(33·여)는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광원 집안이었던 그의 집은 늘 가난했다. 먹을 게 없으면 이웃집에서 빌려 먹었다. 하지만 옥수수 1kg을 빌려 먹으면 3kg를 갚아야 하는 고리대금에 시달렸다.

14세가 됐을 때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남의 집에 가서 꾸어 올 형편도 되지 않았다. 집에는 옥수수는커녕 무시래기도 없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부모 모르게 집을 나왔다. 땅에 떨어진 음식, 사람들이 버린 과일 껍질과 쉰 옥수수를 주워 먹으면서 열흘을 버텼다.

박 씨는 성인이 되면서 탄광에서 일을 시작했다. 탄광 측에서는 “돈이 없어서 봉급 줄 형편이 안 되니, 캔 석탄을 메고 가 팔아서 식량을 사라”고 말했다. 탄광에선 1명당 하루에 석탄 한 배낭을 가져가는 걸 허락했다. 다섯 식구의 한 끼를 해결할 돈밖에 되지 않았다. 박 씨는 밤새 탄광과 집을 오가며 석탄을 도둑질했다. 날이 밝아올 때쯤엔 어깨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웃집 동창생의 집에 들렀다. 동창은 중국에 다녀온 뒤 국수와 밥, 콩기름을 먹고 있었다. ‘나도 중국에 갔다 오면 저렇게 살 수 있겠구나. 내가 고생해서 집을 일으키자’는 생각을 했다. 2004년 박 씨는 브로커를 만나 중국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북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신매매였다. 그로부터 10년, 그에게 고향은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돼버렸다.

투먼=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꽃제비#탈북과정#인신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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