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탈북과정 인신매매… 꽃제비 출신 30대 여성
“집에 먹을 게 없어 방랑생활을 했습니다. 꽃제비 생활을 한 겁니다.”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뒤 중국에서 살고 있는 박모 씨(33·여)는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광원 집안이었던 그의 집은 늘 가난했다. 먹을 게 없으면 이웃집에서 빌려 먹었다. 하지만 옥수수 1kg을 빌려 먹으면 3kg를 갚아야 하는 고리대금에 시달렸다.
14세가 됐을 때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남의 집에 가서 꾸어 올 형편도 되지 않았다. 집에는 옥수수는커녕 무시래기도 없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부모 모르게 집을 나왔다. 땅에 떨어진 음식, 사람들이 버린 과일 껍질과 쉰 옥수수를 주워 먹으면서 열흘을 버텼다.
박 씨는 성인이 되면서 탄광에서 일을 시작했다. 탄광 측에서는 “돈이 없어서 봉급 줄 형편이 안 되니, 캔 석탄을 메고 가 팔아서 식량을 사라”고 말했다. 탄광에선 1명당 하루에 석탄 한 배낭을 가져가는 걸 허락했다. 다섯 식구의 한 끼를 해결할 돈밖에 되지 않았다. 박 씨는 밤새 탄광과 집을 오가며 석탄을 도둑질했다. 날이 밝아올 때쯤엔 어깨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웃집 동창생의 집에 들렀다. 동창은 중국에 다녀온 뒤 국수와 밥, 콩기름을 먹고 있었다. ‘나도 중국에 갔다 오면 저렇게 살 수 있겠구나. 내가 고생해서 집을 일으키자’는 생각을 했다. 2004년 박 씨는 브로커를 만나 중국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북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신매매였다. 그로부터 10년, 그에게 고향은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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