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북한이 잇달아 서방 언론에 ‘속살’을 내보이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당국은 3일 영국 공영방송 BBC에 남북 첫 합작 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를, AP통신에는 베일에 가려있던 인트라넷 ‘광명’을 전격 공개했다. 외국 언론을 향한 북한의 선전 공세는 장성택 처형 뒤 악화되는 국제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평양과기대, 광명 같은 정보기술(IT) 분야를 알리는 것은 첨단기술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뒤처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 행진곡 부르며 이동하는 학생들
BBC 탐사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팀은 북한 당국의 이례적인 방문 허가를 얻어 2010년 남북 첫 합작 대학으로 개교한 평양과기대 캠퍼스의 운영 실상을 소개했다. BBC는 북한 당국과 18개월간의 협상 끝에 취재 허가를 받았다.
BBC는 북한 내 유일한 사립대학인 평양과기대를 “북한 독재의 심장부에서 서구 자본으로 운영되는 대학”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취재팀 차량은 경비병이 지키는 보안초소를 거쳐서야 진입할 수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깔끔한 양복과 티셔츠, 넥타이를 맨 학생들이 아침식사를 하러 가면서 ‘김정은 최고 사령관님을 목숨을 다해 지키겠다’는 행진곡을 불렀다.
식당에서 만난 한 북한 학생은 미국에 적개심이나 경계심이 없느냐는 질문에 “미국이라는 국가와 미국인은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우리는 세계의 모든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영어로 답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마이클 잭슨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양과기대는 연변과기대 설립을 주도했던 재미 사업가 김진경 총장(78)이 북한의 요청을 받고 세웠으며 설립기금 2000만 파운드(약 356억 원)의 대부분을 미국과 한국 기독교 자선단체가 지원했다. 학생 500명은 북한 당국이 선발한 최고위층의 자제들이며 100% 영어 강의로 이루어진다. 40명의 강사진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영국인인 콜린 매컬록 경영학 강사는 “현대 사회에서 완전한 폐쇄 경제는 불가능하다. 북한 지도부도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북한의 미래 엘리트를 키우는 평양과기대가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의 사고를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 인터넷의 독재 버전 ‘광명’
AP통신이 김일성대 e라이브러리를 방문해 취재한 인트라넷 광명은 인터넷 접근이 제한된 북한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내부 인터넷 시스템이다. 북한 당국이 외국 IT 자문관의 접근까지 철저히 통제할 만큼 비밀리에 운영해온 광명을 전격 공개한 것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IT 분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통신은 광명을 “자유로운 인터넷의 독재주의 버전”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채팅과 e메일은 모두 감시를 거쳐야 하고 검색엔진 ‘내나라’로 접근할 수 있는 웹사이트는 1000∼5500개에 불과하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면 광명은 ‘정보의 빈곤’인 셈이다. 광명이 제공하는 정보는 정부 대학 기업이 일방적으로 배포하는 정보가 대부분이다. 오락 상거래 대화 등 쌍방향으로 진화하는 글로벌 인터넷 조류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통신은 광명을 알고 싶으면 1980년대 미국에서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연상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윌 스콧 평양과기대 컴퓨터 강사는 “광명 사용자들이 e메일이나 채팅을 할 때 워낙 자기 검열을 하다 보니 정보당국이 철저히 감시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외국인과 극소수의 교수, 대학원생에게만 특정 장소에서 접근이 허용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험하고 금지된 영역’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어 접근 자격이 있어도 대부분 접속을 꺼린다. 인터넷의 자유로운 접근을 요구하는 풀뿌리 운동도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이 광명을 통해 자유로운 정보 접근을 막고 있지만 개방된 인터넷 체제로 나아가는 ‘IT 댐’의 수문을 계속 막아 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통신은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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