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쇼 주한日대사 “日 집단자위권에 대한 한국 우려 알아… 투명하게 설명할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벳쇼 주한日대사 인터뷰]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현안에 대해 답하고 있다. 벳쇼 대사는 80분 동안의 인터뷰 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신중하게 답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현안에 대해 답하고 있다. 벳쇼 대사는 80분 동안의 인터뷰 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신중하게 답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는 1시간 20분 동안 인터뷰하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선 얕은 미소조차 찾기 어려웠다. 마치 외교 문제로 한국 외교부 청사에 초치(招致)돼 왔을 때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이날은 벳쇼 대사가 61세 생일을 맞은 날이었지만 인터뷰는 시종일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최악의 상태인 한일관계 탓에 질문도, 답변도 모두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벳쇼 대사는 ‘평화’와 ‘세계 공헌’이라는 단어를 반복해 사용했다.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우방이 공격받았을 때 대신 반격할 수 있는 권리) 확보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특히 그랬다. 외교관의 숙명상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답이 반복되면서 ‘평화’라는 단어가 한국과 일본에서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인 양 들렸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역사 문제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정해진 게 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신사 참배, 독도 문제, 교과서 왜곡 등 어느 하나 속 시원한 대답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에서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올해 추가 참배가 이뤄지나.

“아베 총리 본인도 말했듯이 참배는 다시는 전쟁의 피해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부전(不戰)의 맹세’로 이뤄진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추가 참배 여부는 총리가 ‘어떻게 할 것이라고 발언하지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도 말할 수가 없다.”

―2월 22일은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고시한 날이다. 차관급 일본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지난해와 달리 올해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할 수 있나.

“시마네 현에서 주최하는 행사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일본 정부 차원에서 정해진 것이 없다. 영토 문제는 어려운 것이다. 정말 한일관계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 먼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로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생존자에 대해 일본 정부 차원의 보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한일 정부가 협의할 수 있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특히 그는 일본이 1995년 ‘아시아 여성기금’을 조성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996년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명의로 편지를 보내는 등 노력해왔음을 강조했다. 벳쇼 대사의 말에는 일본이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것이 전혀 평가받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과 해법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 섞여 있었다.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한국인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들린다. 현재 불편한 한일관계는 한국인의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뜻인가.

“한일관계는 개인이나 경제 교류는 긴밀하고 이해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 차원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 사람이 서로 만나는 교류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벳쇼 대사는 지난해 일본이 아시아 국가에서 3만 명의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 가운데 한일을 오간 인원이 4400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홈 스테이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접하고 이해를 높였다며 “한국과 일본 모두 상대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하고 상호 경의를 표해야 신뢰가 쌓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에게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없다”고 하자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고 권했다.

―한국은 일본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대해서도 관심과 우려가 많다.

“반복해 말하지만 평화적으로 국제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일본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지 논의(아베 총리의 사적 자문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를 의미)가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를 일본 정부에서 받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자체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모든 국가가 보유한 것이다. 유엔 헌장에도 나온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평화헌법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되 행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은 그동안 경제 원조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 공헌해왔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평화유지군 파병도 했다. 하지만 국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에 걸맞은 공헌이 필요하다는 기대감이 높아져 왔다. 2003년 이라크전 복구 지원을 위해 일본은 자위대 공병부대만 보냈다. 기지 주변 정세가 불안정했지만 (평화헌법에 묶여) 치안지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한국 한빛부대에 탄약 1만 발을 빌려줬던 남수단 자위대 평화유지활동(PKO) 사례도 곁들였다. 벳쇼 대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이해하기 때문에 높은 투명성을 가지고 설명을 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향에 대해 한국 정부에 이미 설명했나.

“한일은 지금까지 안보문제로 긴밀하게 대화해 왔다. 현재 검토회의 결과가 나오면 한국 정부에 이를 설명할 것이다. 한일은 안보상 이익과 입장을 공유하고 있고 양국 모두 미국의 군사 동맹이다.”

내년이면 한국과 일본은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이대로 한일관계가 이어지면 어떤 모습이 될 것 같으냐’고 대사에게 물었다.

벳쇼 대사는 “(미래를 보는) 크리스털 구슬이 없어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올해는 말(馬)띠 해다. 말에는 짐을 끄는 말도 있고 농사짓는 말도 있다. (말띠인 나도) 맡은 바 역할을 하면서 한일관계 증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80분의 질의응답을 끝냈지만 답답함과 아쉬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61세(1953년생) ▷일본 도쿄대 법학부 졸업 ▷일본 외무성 입부(1975년) ▷주미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1990년) ▷주미 일본대사관 참사관(1992년) ▷아주국 동북아과장(1995년) ▷주OECD 일본대표부 공사(1999년) ▷일본 총리 비서관(2001년) ▷외무성 총합외교정책국장(2006년) ▷외무성 외무심의관(2010년) ▷주한 일본대사(2012년∼)
▼ “한일관계 나빠도 北核엔 긴밀 공조해야” ▼

“장성택 처형후 北 불확실성 증가… 北-日 제3국 접촉, 분명히 없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나빠진 한일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 대응 등 안보문제만큼은 긴밀한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 관계는 지역 평화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한 관계로 북한에 대한 한일, 한미일 공조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며 “(지난해 9월 유엔에서 가진) 양국 외교장관회담에서도 한일이 북한 문제에 대한 이익이나 입장은 일치함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전격 처형 이후 북한 체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2∼4월 도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이 한국을 따돌리고 북한과 외교적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총리 자문역)가 아베 신조 총리의 지시로 극비 방북했을 때 한국은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일본 언론은 ‘일본과 북한 당국자가 베트남에서 비밀 접촉했다’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이 ‘독자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벳쇼 대사는 “제3국 북-일 접촉은 없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며 “한일은 각자 북한과의 관계에서 독자적인 의제가 있으나 긴밀히 공조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에 납북자 문제는 법적, 인도적 사안이면서 주권과 관련된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한국이 이해해주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벳쇼 대사는 2002년 북-일 정상회담과 평화선언을 통해 납북자 문제 해결에 물꼬를 텄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비서관을 맡아 북-일 현안에 정통하다. 그는 “납치 문제는 핵과 미사일 문제 등과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한미일 공조 속에 ‘압박과 대화’ 전략을 병행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역사 문제로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이 공조한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벳쇼 대사는 “한국이 중국의 손을 잡고 일본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주한 일본대사로서 한일관계도 중요하지만 3국(한중일) 협력도 증진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박원재 편집국 부국장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일본#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집단 자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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