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구 부채 빨간불… ‘지자체 파산제’ 6·4 최대 화두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3일 03시 00분


[지방자치 20년]<下>점점 나빠지는 지방 재정건전성
[막오른 지방선거]

올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위)과 전남 영암군의 F1 경기장(아래). 민선 지자체장들이 추진한 국제행사와 대규모 건설사업들로 지방 재정이 악화된 가운데 정부는 최근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올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위)과 전남 영암군의 F1 경기장(아래). 민선 지자체장들이 추진한 국제행사와 대규모 건설사업들로 지방 재정이 악화된 가운데 정부는 최근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김연식 강원 태백시장은 2010년 취임 직후 시장실에서 한 은행 임원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았다. 태백관광개발공사가 운영 중인 오투(O₂)리조트와 관련한 이자 14억4000만 원을 빨리 갚으라는 얘기였다. 4년이 흘러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태백관광개발공사의 부채는 2012년 현재 3392억 원으로 태백시의 올해 예산인 2300억 원보다도 많다. 오투리조트는 민선 1∼3기 시장을 지낸 홍순일 전 시장이 ‘지역경제 살리기’ 공약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추진한 사업이다. “경제성이 없다”는 사업성 분석 결과가 나왔지만 태백시는 4400억 원을 투자해 사업을 밀어붙였다. 》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민선(民選) 지방자치는 지역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특히 부채 100조 원에 육박하면서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지방 재정 건전성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지방 재정 건전성은 올해 지방선거의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인천 파산 위험 가장 높아

지자체 파산제도는 재정이 극도로 부실해진 지자체에 대해 빚을 탕감해주는 대신 중앙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파산제 도입 방안이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정부는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40%를 넘으면 재정 위험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파산 위험이 가장 큰 지자체는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35.1%인 인천이다. 민선 4기 마지막 해였던 2009년 2조4773억 원이었던 인천의 부채 규모는 2012년 2조9309억 원으로 3년 사이 5000억 원가량 늘었다. 최근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부채 규모를 줄이고 있는 대구(예산 대비 채무 비율 32.6%), 부산(30.8%) 등도 파산 위험이 있는 지자체들로 꼽힌다.

다른 지자체들 역시 재정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시를 제외한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2010년 시작된 민선 5기 들어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악화된 곳은 대전과 경기 등 9곳에 이른다. 특히 충남(19.1%), 경북(14.2%)은 2012년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2009년의 2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 자치단체장 과시성 사업에 재정 시름

재정이 악화된 지자체는 대부분 민선 지자체장이 공약으로 추진한 국제행사나 산업단지 조성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채가 크게 늘어난 곳들이다.

인천은 안상수 전 시장이 공약으로 내건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면서 재정이 크게 악화됐다. 정부가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지어 놓은 문학경기장을 아시아경기 주경기장으로 쓰도록 권고했지만 안 전 시장이 새로운 경기장 건설을 고집하면서 아시아경기 준비에만 2조3000억 원 이상의 재정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전남은 2006년 박준영 지사가 유치한 F1 대회로 지난해까지 2000억 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냈다. 정만규 시장이 해양관광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2012년부터 삼천포 일대에 레이저쇼 시설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경남 사천시는 투자를 약속한 기업이 수익성 부족을 이유로 참여를 포기했는데도 자체 비용을 들여 사업을 강행하고 있어 지난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지자체 파산제 찬반 논란

지자체 재정 악화는 주민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과시성 이벤트와 대형 건설사업에 들어갈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 편익 사업을 위한 예산을 쥐어짜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는 올해 240명의 교사가 명예퇴직을 신청했지만 관련 예산이 40%가량 줄어 116명에 대해서만 명예퇴직을 수용했다. 인천은 도시철도 2호선 준공 시기도 올해에서 2016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무리한 경전철 사업으로 부채가 늘어난 경기 용인시는 지난해 주민센터 건립비나 학교시설 개선 등 교육예산을 삭감하기도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자체 파산제도가 도입되면 심각한 지방 재정을 정상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안행부 관계자는 “정부가 강도 높은 부채 감축에 나설 수 있게 되면서 방만 재정으로 인한 재정 악화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방세 수입이 20%대에 불과해 가뜩이나 지자체의 중앙 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이 심한 상황에서 지자체 파산제도로 중앙 정부의 재정 개입이 더욱 강화되면 자치제도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홍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일본은 파산 지자체의 공무원 급여 삭감, 공공요금 인상 등에 나서는데 이를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한국에서는 파산 제도로 부채를 줄일 수단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이인모·황금천 기자
#지방자치#지방선거#재정#지자체 파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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