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독도방문, 그후 1년6개월…한일 갈등 크게 달라진 5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3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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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은 이명박 대통령(MB)이 독도를 방문한 지 1년 6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MB는 2012년 8월 10일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당시에는 긍정적인 의견도 많았고, 비판은 있어도 그리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한일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길어지면서 비판적 의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MB의 독도 방문이 옳았느냐, 틀렸느냐의 평가는 유보하고자 한다. 다만 그의 독도 방문이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험악해졌다는 한일 관계의 단초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MB방문만이 양국 경색의 이유인가. 당연히 아니다. 관찰자에 따라 그 이유를 수십 가지라도 들 수 있겠으나 요즘 한일 갈등의 양상이 예전과 다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5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이들 난제를 해결하거나, 적어도 덮어 두기로 암묵적 합의를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형국이다. 그만큼 요즘 두 나라 관계는 현자(賢者)의 부재를 슬퍼할 만큼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한일 갈등의 달라진 양상 중 첫 번째는 양국 지도자, 즉 아베 신조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선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본이 문제를 일으키면 한국이 반박하는 패턴이 많았다. 그러나 총리와 대통령이 직접 공수를 주고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베 총리 스스로가 논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고, 한국도 대통령이 직접 대응에 나서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아베 총리의 퇴행적 역사관이 가장 큰 문제다. 그는 '역사 앞에서의 겸허한 자세'를 일탈했다. 일본의 역대 어느 총리보다 심각하고 노골적이다. 한국인은 예전에 일본과 총리를 분리해서 보려는 경향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베=일본'으로 보는 경향도 강해졌다. 즉 총리 개인도 문제지만, 이런 아베 총리를 용인하는 일본 사회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감정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국내 인기는 한국이나 중국의 평가와 달리 매우 견고하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할 가능성은 적고, 다음 참의원 선거는 2016년 7, 8월경에 있을 예정이어서 그는 앞으로 최소 2년 반 정도는 안정적으로 정권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 쉽게 양보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이번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에 맞서 박 대통령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하다. 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일본을 비판한 첫 사례는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한 비판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수면 하에서 양국이 뭔가 해결책을 논의 중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일본 비판을 자주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전문가도 없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 후에도 미국, 중국, 유럽 등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기자회견 등을 통해 예외 없이 일본을 비판했다. 국내에서 일본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어렵다는 의견도 한결같았다.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일본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스탠스로 한일관계를 이끌어나갈 것이며, 정상회담의 전제는 최소한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다만 대통령이 너무 분명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참모진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고, 문제 해결의 기대수준을 꽤 높여놓은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는 일본과 일본인의 태도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도 아베 총리의 등장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것과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아베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도 일본과 일본인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태도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요즘 일본의 국내 분위기를 아베 총리와는 별도로, 즉 독립변수나 상수(常數)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과 일본인은 예전에는 한국이 사과 요구를 하거나 비판을 하면 '기분은 좋지 않으나 예전에 잘못한 게 있으니 감수해야지 어쩌겠나'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또 그 소리냐,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현상을 일본 시각에서는 '사과 피로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이런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화다. 그러나 이는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나빠졌고, 문제 해결이 더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지식인이나 한류팬, 그리고 한국 쪽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던 일본인들의 태도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우리에겐 아픈 대목이다.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던 정치가나 시민단체들의 입지도 덩달아 좁아졌다. 최근 한국의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지만 일본의 주간지를 중심으로 한국을 비판하거나 증오를 부추기는 기사가 늘어나고, 그런 류의 책이 많이 팔리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때리기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덧붙이자면 일본의 제1야당,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집권했던 민주당은 현재 그 존재가 미미하다. 자민당으로부터 힘들게 정권을 빼앗아온 민주당이 집권 기간에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탓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언제 다시 정권을 탈환할 수 있을지도 기약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집권 당시 자민당보다는 한일관계를 더 중시했고, 과거사에 관해서도 '근신'의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당세가 크게 줄어들어 거대 자민당과 아베노믹스로 지지를 받고 있는 아베 총리를 견제하는데 역부족이다. 9일의 도쿄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지지한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가 아베 총리에게 반기를 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지지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후보(전 총리)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것도 아베 독주의 한 상징이다.

세 번째는 한일 간의 갈등이 양국 국경을 넘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일 간의 갈등이 빨리 봉합됐다면 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양국 동포들의 움직임들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들이 한국과 일본의 대리전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동포들의 움직임이 모국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양국의 외교가 개입해서 갈등을 키우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동해 병기 문제도 사실 한일 간에 큰 마찰이 없었다면 재미동포들의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로 이해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주미일본대사까지 정색을 하고 저지공작에 나서면서 관심이 증폭됐고, 주변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하게 보도되면서 양국 국민의 감정을 더 건드려 놓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 위안부 소녀상, 프랑스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에서의 위안부 만화 전시, 일제의 강제노동 관련시설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신청 등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양국의 장기 갈등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뉴스는 당연히 새로운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 중 무엇을 픽업할지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에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곧바로 기사의 크기와 보도의 빈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앞으로도 해외에서 양국 동포들이 부딪히는 일이 벌어지면 언론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는 양국간 갈등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익과 자존심이 걸려있는데다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바람에 이를 멈추게 할 방법도 마땅찮은 게 현실이다.

네 번째는 당연히 중국의 부상이다. 사실 한국과 중국이 동시에 일본과 갈등을 빚는 경우는 드물었다. 즉 한국이 반발할 때 중국은 관망하고, 중국이 반발할 때 한국이 관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이 역할을 바꾸면, 우스갯소리로 한국과 중국이 '임무교대를 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력이 커진 중국은 예전의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어 하고, 현재의 영향력과 국익을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 슈퍼 강대국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상시적으로 불협화음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 대목에서 염두에 둘 일이 있다. 한국은 지금 중국과 묘한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착시일 뿐이다. 중국은 앞으로 한일관계와 관계없이 독자행동을 할 게 분명하다. 한국은 중국과는 관계없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대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일본과 맞서야 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전격적으로 화해하는 것이 한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학자도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역할이 애매해졌다는 것이다. 한국도 일본도 미국과 모든 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현재까지 직접적인 개입이나 해결사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일본의 '일탈'이 계속되자 미국도 고민에 빠진 게 사실이다. 최근 들어 일본의 과거사인식에 대해 비판하는 관료나 오피니언리더들이 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 미국은 현재 일본을 매우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이 '집단자위권 확대' 등을 통해 소위 '보통국가'나 '정상국가'가 되는 것을 끝까지 지지할 것이며, 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이 점을 냉철히 받아들여야 한다. 언젠가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 일본을 화끈하게 꾸짖어 줄 것이라고 예단해서는 큰 낭패를 볼 것이다. 다만, 미국이 과거사문제를 제쳐두고 일본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한일 간의 갈등을 풀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많은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으나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기회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책이나 제안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심규선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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