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기다렸는데… 하루가 60년 같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0일 03시 00분


이산상봉자들이 꿈에 그리던… 마침내 그날
96세 민재각씨 등 南82명 20일 北가족 만나

“60년 넘게 기다렸는데 지금은 하루가 60년 같소.”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김철림 씨(95)의 얼굴은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김 씨는 이번 상봉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여동생 2명을 만난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김 씨는 1·4후퇴 때 피란을 떠난 것이 동생들과의 생이별이 됐다. 이제는 동생들의 얼굴도, 정확한 나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70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김 씨는 “물어볼 말은 많은데 막상 만나면 말이 안 나올 것 같아. 너무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만나게 돼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19일 오후 강원 속초의 한 콘도 1층 로비는 남측 이산가족 상봉자와 동행 가족, 선물 보따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간단한 건강검진과 방북 교육을 받고 리조트에서 하루 묵은 뒤 20∼22일 4년 만에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난다. 23∼25일에는 북한 측 신청자가 한국의 가족을 찾는 2차 행사가 이어진다.

1차 상봉 대상자 82명 가운데 최고령인 민재각 씨(96)는 아들과 함께 정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 씨의 마음은 설렘보다 한스러움이 더 크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삼남매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민 씨는 이번 방북에서 손자 지영 씨(46)를 만난다. 민 씨는 “의외로 기분이 담담해. 그래도 이렇게 오래 산 게 남아 있는 피붙이를 만나려고 그런 것 같아. 늦었지만 다행이지”라고 말했다.

같은 최고령자인 김성윤 씨(96·여)는 여동생 석려 씨(81) 등 3명을 만난다. 휠체어에 의지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김 씨는 “어젯밤 2시간밖에 못 자고 뜬눈으로 보냈다. 가족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만나게 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달려온 이도 있었다.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홍신자 씨(84·여)는 10일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척추골절 치료를 위한 수술을 받았고 이날 오전 주치의의 퇴원 허락을 받아 상봉행사에 참가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홍 씨는 “오늘 아침까지도 못 가는 줄 알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여동생을 70년 만에 만나는데 눈물만 나올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속초=이인모 imlee@donga.com / 윤완준 기자
#이산상봉#북한#이산가족상봉#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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