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命]권노갑 회고록<8>김영완과의 악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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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거래 40억 폭리”… 며칠뒤 그가 돈뭉치를 들고 왔다

1988년 권노갑의 첫 국회의원(13대) 당선을 축하하고 있는 DJ. 김대중 의원의 비서관이 된지 25년 만의 일이다. 권노갑 고문 제공
1988년 권노갑의 첫 국회의원(13대) 당선을 축하하고 있는 DJ. 김대중 의원의 비서관이 된지 25년 만의 일이다. 권노갑 고문 제공
○국정감사

내가 무기중개상 김영완 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국정감사 때다.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에 속해 있던 나는 보좌관들이 만든 자료를 보다 국방부가 헬기 24대를 납품 받는 과정에서 국고손실이 40억 원이나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국정감사 때 “어떻게 국방부가 국민의 혈세인 국고 손실을 가져오는 일을 할 수 있느냐? 무기구매에 관한 특별대책을 강구하든지, 아니면 국방부에서 직접 구매하는 방법으로 무기를 도입하든지 해야지, 커미션 베이스로 민간인 에이전트를 통해 무기를 구입하면 막대한 국고손실이 생긴다”는 요지로 질의했다.

나의 이 발언은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런데 당시 헬기 24대를 국방부에 알선한 무기 거래상이 바로 김영완 씨였다.

국정감사 발언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대철 의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내가 김영완이를 잘 아는데, 그 사람이 형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한번 찾아가겠다고 하니 만나 주십시오.”

그런 전화가 있는 뒤 김영완 씨가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더니 “정대철 형님한테 소개를 받았다”면서 내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국방비는 모두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것인데, 폭리를 취하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이니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요지의 충고를 해줬다. 그러자 김영완 씨는 “네, 잘 알았습니다”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1주일 뒤 그가 서울 평창동 우리 집으로 돈 뭉치를 들고 찾아와 내 앞에 내밀었다. 부피로 보면 2000만∼3000만 원쯤 될 것 같았다.

“여보세요, 내가 이미 국회에서 발언을 했고 이런 일은 옳지 않은 방법이라고 했는데 이건 뇌물이 아니냐? 어디서 이런 나쁜 버릇을 배웠느냐?”

나는 그에게 호통을 쳤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태도로 돈 보따리를 다시 싸들고 돌아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영완 씨는 그 시절 평창동에 살고 있었다. 집이 가까운 것을 핑계 삼아 우리 집을 자주 찾아왔다. 내가 단돈 100만, 200만 원도 받지 않으니 그는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면서 넥타이 같은 것을 사가지고 왔다. 넥타이는 뇌물이라 생각되지 않았기에 그냥 받았다.

김영완 씨는 본래 서울 출신이고 계동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 집사람도 서울 출신인데다가 처제가 김영완 씨와 같은 계동초등학교를 나왔다. 같은 서울 사람끼리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배경 때문인지 곧 서로 가까워졌던 것 같다. 김영완 씨가 집사람의 비위를 맞췄던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김영완 씨는 그 후로도 우리 집을 가끔 드나들면서 넥타이나 넥타이핀 같은 것을 선물하곤 했다.

○느닷없는 방문

1998년 5월경의 일이다.

한보사건으로 구속수감됐다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가 요양하고 있을 때였다. 아직 사면복권이 안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무렵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재기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기를 필요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일본 게이오대에 유학 가는 일도 있어 집으로 찾아오는 몇몇 대학교수들과 함께 행정학·경제학을 하루 2시간씩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완 씨가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데리고 사전예약도 없이 우리 집에 불쑥 나타났다. 나중에 들으니 김영완 씨는 자기가 권 고문을 잘 아니 인사를 해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두 사람을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김영완 씨는 정몽헌 회장과 중앙고·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매우 친했다고 한다.

어쨌든 찾아온 손님이니 나는 그들에게 커피 한 잔씩을 대접하고 약간의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정몽헌 회장은 TV나 신문에서만 보았을 뿐이고, 이익치 회장도 당시 ‘바이 코리아(Buy Korea)’라는 TV 광고를 통해 알고 있을 뿐, 실제로 그들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정 회장에게 현대가 어려운 모양이니 아버지를 잘 모시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고, 이익치 회장에게는 한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말 정도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그들은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이후는 만난 일이 없다.

다만 내가 서울 태릉에서 김상현, 김영배, 안동선 의원과 함께 골프를 치게 되었을 때, 김영완 씨와 같이 골프를 치러온 이익치 회장을 한 번 더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날 나는 이익치 팀과 골프를 같이 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팀 뒤에서 따로 골프를 쳤다. 그뿐이었다.  

▼ ‘權쑥구 형님’ ▼
“우리사이에 계약서는 무슨…”… 1억4000만원에 받기로했던 집
결국 2억 주고서야 이사… 주변 “참 답답하고 요령 없어”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1988년 13대 총선 때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권노갑 의원의 첫 상임위원회는 국방위.

13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김대중(DJ) 평민당 총재는 새로 비서실장에 임명한 한광옥 의원과 총재 특보로 물러난 권노갑 의원을 불렀다. 당 소속 의원들의 국회 상임위 배정 작업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DJ는 상임위 배정도 직접 했다. 국민들에게 당의 수권능력을 보여주는 일은 의원들의 의정활동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늘 얘기했다. 더구나 1987년 대선 패배 직후라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모두 배정하고 남은 자리는 국방위와 노동위. 의원들이 제일 기피하는 상임위였다. 특히 국방위는 12대 국회 말, 이른바 ‘국방위 회식사건’까지 터져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장성들이 여야 원내총무까지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 국방위 소속 의원들을 구타한, 정말 전두환 정권 때가 아니면 상상도 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DJ가 두 사람을 쳐다봤다. 측근 두 사람이 양보하라는 뜻이었다. 한 의원이 나섰다. “제가 국방위를 하겠습니다.” 재선의원인 한광옥은 11대 때 국방위 경력이 있었다. 권노갑은 앞이 캄캄해졌다. ‘노동? 전혀 아는 게 없는데….’

권노갑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한 실장, 노동을 자네가 하소.” 6·25전쟁 중 미군 부대 통역관으로 일한 경험도 있고, 아무래도 국방위가 괜찮아 보였다. 두 사람의 상임위는 그렇게 정리됐다. 한광옥은 노동위로 들어가자마자 상임위원장을 맡게 된다. 당시 재선의원이 상임위원장을 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10년 뒤, DJ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한광옥을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 임명한다.

권노갑은 DJ의 수제자답게 상임위 활동도 마치 ‘공부하듯’ 열심히 했다. 미국 보잉사의 CH-47D형 헬기 납품비리 의혹 제기는 신문에도 대서특필됐다. 그때 보잉사의 에이전트로 헬기 납품을 중개한 사람이 바로 김영완 씨였다.

권노갑은 이듬해 서울 이태원을 떠나 평창동으로 이사한다. 3선 의원으로 당시 평민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이재근 의원(2009년 작고)이 “분양 원가에 평창동 빌라를 넘겨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재근은 전북 익산의 황등산 돌산 사업으로 큰돈을 번 사업가 출신으로, 3선 의원이었다.

권노갑은 DJ에게 이재근의 말을 전했다.

권노갑=재근이가 분양가 1억4000만 원에 주기로 했습니다.

DJ=(가만 듣고 있다가) 계약서로 남겨놓게.

권노갑=아이고, 재근이하고 저하고 무슨 계약을 합니까. 분양가로 준답니다.

그러나 권노갑은 결국 2억 원을 주고서야 이사를 할 수 있었다. DJ가 웃으며 놀렸다. “거 보게, 그 사람이 그래 분양가로 주던가?”

그런 권노갑을 향해 동교동 사람들은 ‘쑥구 형님’이라고 불렀다. 측근인 국창근 전 의원의 말. “쑥구는 전라도 사투리로 ‘어리숙한 바보’라는 뜻인데 우리끼리는 노갑이 형님을 ‘쑥구’라고 부른다. (웃으며) 너무 답답하고 요령이 없으니까.”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권노갑#DJ#김대중#무기중개상#김영완#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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