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중랑구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다. 문병권 중랑구청장은 공직선거법상 지방자치단체장은 3연임까지만 할 수 있다는 제한에 걸려 6·4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문 구청장이 3연임된 직후부터 구정(區政)이 멈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민 표심을 의식할 일이 없어 용마산 공원 조성, 경전철 면목선 건설 등 구 현안 사업 추진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것. 최근 구 업무 관련 행사장에 구청장 대신 부구청장이 나오는 것을 두고 구정에서 아예 손을 놓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A 서울시의원은 “구에 현안 사업 추진을 요구해도 ‘예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거나 서울시에 떠넘기기 일쑤”라며 “구청장이 움직이지 않으니 공무원들도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3연임 제한에 묶인 단체장들이 있는 지자체들이 단체장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업무를 ‘나 몰라라’하는 등 단체장 스스로 레임덕을 자처하면서 지자체 행정이 흔들린다. ‘마지막 선물’이라며 원칙 없는 보은성 인사를 남발해 공무원들의 원성이 자자한 곳도 있다.
○ 구 행정 “나 몰라라”
박준영 전남지사(3연임)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된 1월 25, 26일 전남도 산하 기관장들과 골프를 쳤다. 당시 도내 11개 농장에서 AI 감염이 의심되는 닭과 오리 30여만 마리가 도살처분되는 등 비상이 걸렸다. 26일은 해남의 종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인 H5N8형 AI가 확진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 박 지사는 “도에서 투자한 골프장을 홍보하려고 골프를 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도내에서는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종화 대구 북구청장(3연임)이 2010년 6월 지방선거 당시 내건 공약은 5개 분야 33건. 5일 현재 마무리한 공약은 14건으로 공약 이행률은 42%에 불과하다. 북구 산격동에 있는 경북도청이 올해 말 안동으로 옮겨갈 계획이지만 이 구청장은 비게 되는 도청 터 활용 방안에 대해 이렇다할 언급을 하지 않아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 구청장은 지난달 13, 14일에 열린 안경산업토탈비즈니스센터 기공식과 북구의회 임시회에 당초 참석하기로 했지만 배광식 부구청장을 대신 보냈다. 한 주민은 “단체장으로서 존재감이 없는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달 25일에는 배 부구청장마저 북구 구청장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구정이 마비됐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3연임인 이학렬 경남 고성군수는 고성군 홈페이지 군수 일정에 1월 10일 이후부터 일정을 아예 등록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이 군수가 이미 퇴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 마지막 ‘보은 인사’
마지막 권력을 휘두르며 보은성 인사를 남발하다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울산시 내무국장 출신인 박맹우 울산시장(3연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사 전문가. 그러나 최근 인사 파행을 보이고 있다. 그는 1월 시 산하기관인 울산신용보증재단 새 이사장에 측근인 정천석 전 울산 동구청장을 내정했다가 임용 직전 철회했다. 정 전 구청장은 2010년 12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 확정 판결을 받아 공직선거법상 내년 12월까지 지방공사 및 공단의 상근 임원에 임명될 수 없었지만 인사를 강행하다 실패한 것. 박 시장은 시 인사에서도 최측근인 비서실장을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시키는 등 비서실 직원 3명을 대거 승진시켰다. 서기관 승진에서 탈락한 한 공무원은 “울산시에는 사무관으로 승진한 지 15년 이상이 지나 승진해야 할 공무원이 많은데도 승진한 지 10년도 안 된 비서실과 안전행정국 소속 사무관을 서기관으로 승진시켰다”고 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진급을 위한 최소 근무 연수를 채우지 않은 공무원을 직무 대리 형식으로 국장 자리에 올렸다가 원칙 없는 인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남도의 한 직원은 “직무 대리 형식이어서 승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무리한 인사로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라고 했다.
○ 지방의회도 선거 때문에 견제 어려워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같은 폐해에 대해 3연임 제한을 철폐해야 레임덕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3연임 제한이 정상적인 선거 경쟁을 막아 현직 지자체장의 일하려는 의지를 꺾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레임덕을 막으려 3연임 제한을 풀었다가는 지방 권력이 독점화되는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도 팽팽하다.
전문가들은 레임덕을 막을 이렇다 할 제도적 보완책이 없는 현재로서는 지방 의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곽채기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3연임 단체장의 임기 말에 지방 의회가 감시 기능을 더 활성화해 레임덕을 막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3연임 단체장의 레임덕이 심각해질 무렵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기초의원(시·군·구의원) 역시 다음 선거 출마를 준비하느라 의정에 소홀한 경우가 많아 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강감창 서울시의원은 “임시의회 때 시정 질문으로 시 행정을 견제해야 하지만 시장이나 시의원이나 모두 선거를 앞둔 터라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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