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18일 진땀을 뺐다. 민주당과 합치는 통합신당의 좌표 역할을 할 정강정책을 두고서다. 새정치연합은 가급적 민주당 색채를 빼려다 민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표 업적으로 꼽히는 남북 간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계승 여부다. 새정치연합이 17일 민주당에 건넨 정강정책 초안에는 ‘6·15’와 ‘10·4’가 없었다. 그러자 민주당 원로들이 발끈한 것이다.
안 위원장은 이날 민주당 상임고문단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으로 초청해 저녁을 함께했다. 민주당과의 접촉면을 넓히려는 의도였지만 원로들의 관심은 온통 ‘6·15’와 ‘10·4’였다. 식당에 들어서며 권노갑 고문은 “6·15와 10·4는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이라고 했고, 정동영 고문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라고 못 박았다. 김상현 고문은 “(6·15와 10·4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역사적 기록인데 그걸 빼자고 함부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꾸짖듯 말했다.
예상치 못한 반발에 안 위원장은 한발 물러섰다. 안 위원장은 식사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서로 초안을 비교하면서 빠진 부분에 대해 보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역사적인 인식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 반영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6·15와 10·4 정신을 정강정책에 명문화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들렸다.
하지만 만찬이 있기 전 새정치연합 측 윤영관 공동분과위원장의 발언은 안 위원장과 사뭇 달랐다. 윤 위원장은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이념 논쟁의 소지를 없애고 초점을 민생에 두자는 것이 양측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그런 방향으로 정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6·15와 10·4의 성과를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 간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털고 가겠다는 뉘앙스였다.
정강정책을 둘러싸고 양측이 충돌할 수 있는 지뢰밭은 곳곳에 숨어 있다. 민주당 기존 강령의 첫 문장은 ‘4월 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비롯한 민주개혁운동’에 대한 승계였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이 문구를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의 어려움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긍정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대체했다.
통일안보 정책과 관련해서도 민주당 기존 강령에는 ‘통일·외교·안보’로, ‘통일’을 최우선순위에 배치한 반면 새정치연합의 초안에는 ‘안보·외교·통일’ 순서로 ‘안보’를 제일 앞세웠다.
논란이 확산되자 새정치연합은 진화에 나섰다.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자처한 금태섭 대변인은 “과거의 사건을 회고적으로 나열하는 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 적절치 않다는 취지였지, 평화통일과 남북대화를 위한 노력과 그 정신을 계승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었다”며 “전부 진심으로 존중한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 친노(친노무현) 진영뿐 아니라 통합에 우호적인 DJ계 의원들까지 반발해 정강정책 조율 과정에서 파열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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