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평양클럽’에 듣는다 <1>伊 메르쿠리 남북겸임 대사
지난달 27일 만난 세르조 메르쿠리 이탈리아 대사는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과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집필 5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장을 인터뷰 장소로 고집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를 화두로 할 이야기가 많으실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 한창인 전시회(3월 24일∼4월 20일) 행사장에서 만난 메르쿠리 대사와 이번 행사를 총괄한 역사학자 출신의 대사 부인 마리아 조반나 파디가 여사는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를 묻는 기자를 ‘군주론’ 필사본 앞으로 안내했다. 마키아벨리의 역작으로 불리는 ‘군주론’은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으며 당시 그 원본을 베껴 쓴 필사본만 전 세계적으로 19점 남아 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시공간을 초월해 한국에 온 마키아벨리에게 북한은 어떻게 비칠지, 다소 엉뚱한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로 독재를 옹호한 사상가라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 지도부에게 달가운 이야기가 아닐까.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삶을 (신이 아닌) 개인이 결정한다는 사고를 탄생시킨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시민의 자유를 강조한 휴머니스트였다. 좋은 정부는 특정한 이념에 얽매여 있지 않다. (북한의 현 리더십은) 마키아벨리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마키아벨리가 꿈꾼 ‘군주국’은 군주가 시민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시민들은 군주를 감시하는 체제다. 상당수는 군주론의 일부분만 읽고 그를 ‘결과주의자’로 오해한다는 학계의 지적을 함께 소개했다. 메르쿠리 대사는 시민사회(civil society) 자체가 북한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대북 지원과 교류는 과거 식량 보건 분야의 ‘원조 중심’에서 과학 농업 분야의 ‘기술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성과물은 어떤 것인가.
“2일부터 이탈리아 학자 및 전문가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백두산 화산 관측 및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한다. 이탈리아는 화산 연구에 상당한 경험이 축적돼 있어 백두산 활화산 진행 상황과 폭발 예측 등 관련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여름쯤 백두산 현장 답사도 함께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 원산 지역에 그린하우스를 짓는 등 효과적인 쌀 수확 기술도 제공하고 있다.”
메르쿠리 대사의 설명대로라면 이탈리아는 이 같은 교류를 수년째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원산에 갈 때마다 방북단 모두가 진심 어린 환영을 받곤 한다”며 “이런 교류가 단순한 농작물 수확이 아닌 상호 신뢰라는 열매를 맺는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통일 구상에서 “씨뿌리기에서부터 추수까지 전 과정에서 남북한이 협력한다면 그 수확물뿐만 아니라 서로의 마음까지 나눌 수 있다”고 밝힌 것과 맥이 닿는다.
그러나 메르쿠리 대사는 성급한 한반도 통일 임박론을 경계했다. 남북한 내 통일에 대한 다수의 지지와 국제사회의 합의가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단, 메르쿠리 대사는 “단군 신화에서부터 언어와 전통문화, 엄청난 단결력까지 외국인의 눈에는 남북 간 공통점이 참 많다”며 “통일 잠재력은 바로 이런 공통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평양클럽 ::
서울 주재 외국 대사가 평양 주재 대사까지 겸임한 것은 2000년 12월부터다. 네덜란드가 북한과 수교
협상할 때 남북한 겸임 대사 제도를 제안했다.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 직후의 화해무드 속에 있던 한국 정부도 이를 전격 수용했다.
남북 겸임 대사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현재 21개국으로 ‘평양 클럽’ 또는 ‘한반도 클럽’으로 불린다. 서울에 상주 공관과
관저를 두고 1년에 한두 차례 방북하는 겸임 대사 대부분은 육로로 평양을 방문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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