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정법 질문에 대한 일반 시민의 반응은 두 가지로 극명히 나뉜다.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군이 어떻게 중국산 태극기를 달 수 있느냐”며 흥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사는 게 자유시장경제의 원리 중 하나이고, 요즘 중국산 제품이 아닌 게 별로 없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당신은 어느 쪽인가.
‘주간동아’ 취재 결과, 국방부 산하 각 부대가 2013년 한 해 동안 조달청에 조달 의뢰해 총 1억5800만 원을 들여 구매한 태극기가 중국에서 제작한 중국산 제품으로 확인됐다. 사단급 게양기 기준으로 태극기 장당 조달 구매가는 2만918원으로, 얼추 계산하면 지난 한 해 우리 군대에서 구매한 태극기는 7550장에 달한다. 또 3월 10일 조달 의뢰해 낙찰된 태극기 납품 업체도 중국산 태극기를 납품할 계획으로, 올 한 해 납품 규모는 2억2800만 원이다. 지난해 조달 구매가 기준으로 보면 1만 장이 넘는 중국산 태극기가 납품될 계획이다.
국산으로 바꾸면 14억 원 소요
국방부는 노후 품목 교체 사업의 일환으로 태극기를 조달 의뢰했고 조달청은 최저가 입찰을 통해 국내 태극기 납품 업체를 선택했으며 이는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행정 행위였다. 실제 대한민국 국기법과 국기의 게양·관리 및 선양에 관한 규정(국무총리 훈령 제601호)에 따르면 ‘모든 행정기관은 원칙적으로 조달청 보급 국기를 구입 활용한다. 다만 긴급한 사유가 있는 등 불가피한 경우와 조달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경우에는 민간 업체로부터 구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태극기 생산 업계에서 국산품 생산을 고집하는 업체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사단급 게양기를 기준으로 장당 납품가는 13만8650원에 달한다. 중국산 태극기에 비해 6배나 비싸다. 최저가 낙찰을 원칙으로 하는 조달 납품 시스템상 국산 태극기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는 형편이다. 만약 올해 기준으로 태극기를 국산으로 바꿀 경우 14억 원 이상 예산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산 태극기를 구매했다고 국방부나 조달청을 나무랄 수 없는 이유도 거기 있다. ‘법대로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방부와 군대가 국가 정체성을 따질 때 그 상징성에서 비롯된다. 시민은 대부분 “다른 행정기관은 몰라도 영토 방위 최전선에 서 있고 국가 자존심을 상징하는 군대만큼은 국산 태극기를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성조기 사랑이 유별난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은 이미 대통령과 체육계가 중국산 성조기를 쓰다 혼쭐난 경험이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거꾸로 매달린 중국산 성조기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흔들다 논란거리가 됐다. 이 때문일까. 2월 미국 하원은 미국 국방부 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성조기를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천, 잉크, 깃대, 깃봉 등 모든 재료를 미국산 재료로만 쓰게 했다. 당시 모든 정부기관이 미국산 성조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사실 국내의 경우 국무총리 훈령 규정대로 태극기를 조달 구매하는 정부 부처와 행정기관이 대부분 중국산 태극기를 쓰고 있을 공산이 크다. 심지어 청와대에 휘날리는 태극기도 중국산일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고 모든 행정기관과 국민에게 국내산 태극기를 쓰라는 것은 또 하나의 애국주의 과잉이자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깃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연방법과 주법이 다른 미국에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미네소타 주는 2007년 주 내 모든 상점에서 미국에서 만든 성조기만 판매토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해 연말부터 발효된 이 법안은 위반 시 최고 1000달러 벌금이나 90일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국산 태극기 구매 강제키로
애리조나 주는 2007년 7월 1일 독립기념일부터 모든 학교와 공립대학 교실마다 미국에서 제작한 국기를 게양토록 했고, 테네시 주는 주 당국이 국기를 구매할 때 미국산만 살 수 있게 했으며, 뉴저지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중국산 성조기 수입액만 530만 달러에 달한다. 미국 연방 당국은 각 주의 이런 입법 움직임이 국산과 외국산 물품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된다는 점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의 대표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네소타 주의 중국산 성조기 방지 법안을 ‘애국적 놀이’라고 빗대며 조롱했다. WSJ는 “법안 지지자들은 미국산 성조기를 태우는 것은 합법이라고 하면서 중국산 성조기를 쓰면 감옥에 보내라고 한다. 그러면서 메이저리그에서 수년째 코스타리카산 야구공을 쓰는 데 대해선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핫도그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도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성조기가 의미하는 옛 영광은 다른 나라와 무역하는 권리를 포함한 자유를 표상한다. 사람들이 성조기를 흔들 때 생각하는 것은 어디서 만들어졌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것, 곧 자유”라고 꼬집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법상 하자가 없다 해도 우리 군대의 상징성이나 국민 정서상 우리만큼은 국산 태극기를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단 중국산 태극기가 납품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가만있을 수 없다. 전군 예하부대에 6월 6일 현충일까지 중국산 태극기를 전량 국내산 제품으로 교체하라는 지시문이 내려갔다”고 밝혔다.
국방부 측은 또 “내년부터는 조달청에 조달 의뢰를 하면서 국내산 태극기 구매를 강제토록 해 앞으로는 중국산 태극기 구매를 일절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몸 바쳐 희생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에 중국산 태극기가 휘날린다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만약 값비싼 국내산 태극기를 산 우리 행동이 국무총리 훈령을 어긴 것이라며 감사원 감사를 실시한다 해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4년 5월 28일자 9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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