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거취를 놓고 여권 수뇌부는 하루 내내 긴박하게 움직였다. 문 후보자에 대한 여권 내부의 반대 기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가 임박했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청와대 정무 라인은 새누리당 의원들을 접촉한 내용을 취합해 국내에 있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직보했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듣기에 따라서 대통령이 불편해할 수 있는 내용 모두가 그대로 보고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앙아시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도 이 같은 분위기를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서청원, 사실상 사퇴 촉구
친박(친박근혜) 맏형인 서청원 의원은 이날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는 “최근 문 후보자 지명 이후 언행을 하나하나 보고 국민의 여론을 많이 경청한 결과 지금은 문 후보자 스스로 언행에 대한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심각한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며 “문 후보자는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설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던 전날 태도를 뒤집은 것이다.
당청관계 재정립이 7·14 전당대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서 의원이 선제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서 의원 측은 “3, 4일 전부터 총리 후보자를 안고 갈 것인가를 고민했다”면서 “총대를 메고 당의 큰 골칫거리를 정리해줬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와의 교감설은 부인했다. ‘서청원의 힘’을 부각해 당심(黨心)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재·보선 앞두고 민심 악화 우려
여권의 기류 변화는 7·30 재·보궐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민심 악화로 자칫 재·보선에서 패배할 경우 정국 주도권을 야당에 통째로 넘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본회의 표결 처리 전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미 초선 의원 6명이 대놓고 자진 사퇴를 촉구한 데다 무기명 비밀투표이기 때문에 표 단속 자체가 쉽지 않다. 핵심 당직자는 “최소 의원 50명이 이탈할 수 있다는 소문이 당내에서 돌았다”면서 “당장 재·보선을 앞둔 당으로서는 더이상 민심 악화를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 여당과 청와대 모두 돌아서는 분위기
이완구 원내대표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강제적으로 의원들의 판단을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당론투표는 없을 것”이라며 “헌법기관인 의원들의 개인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새누리당 비례대표 초선 모임에 참석해서도 “당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겠다. 국민의 뜻과 의원들의 뜻에 따라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임명동의안 결재를 보류한 것을 놓고도 여권 내부에서 엇갈린 해석이 나왔다. 문 후보자는 퇴근길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해외 일정에 쫓겨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들었다. 시차가 있어 오늘밤에는 어려운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한-우즈베키스탄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1시간 반 정도를 넘겨 진행됐고, 박 대통령이 전자결재를 위해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임명동의안이 18일엔 제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여권 인사들은 임명동의안 결재 보류 자체가 문 후보자에게 자진사퇴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 후보자가 버틸 경우 여권 내부가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진다. 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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