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승부였다. 득표율 49.76% 대 48.17%. 강원도민의 절반은 그를 택했지만 절반은 외면했다. 6·4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최문순 강원도지사(58·새정치민주연합)는 이를 의식한 듯 “도민의 선택을 가슴 깊이 새기고 도정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최 지사는 개표 초반 뒤지다가 5일 오전 2시경 역전에 성공했다. 2011년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필승카드로 내세운 엄기영 전 MBC 사장과의 대결 때보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는 “출구조사 결과가 2.4% 이기는 것으로 나와 박빙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엎치락뒤치락할 줄은 몰랐다”며 당시의 초조했던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국민 여러분께 선거의 재미를 준 것으로 만족한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 지사는 12일 강원도청 통상상담실에서 동아일보, 종합편성TV 채널A와 공동인터뷰를 갖고 선거 과정의 소회는 물론 도정과 국내 정치 등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인터뷰는 동아일보 심규선 대기자와 채널A 이명건 사회부장이 진행했다.
―조직 대 개인의 힘든 싸움이었다. 새누리당 조직력을 개인 역량으로 극복한 셈인데….
“강원도에서는 새누리당의 조직력이 압도적이다. 국회의원 숫자 9 대 0, 시장·군수 17(무소속 2명 포함) 대 1, 도의원 38(무소속 2명 포함) 대 6이다. 조직과 개인적 성과가 부딪치는 대결이었다.”
―영동과 영서 표심이 갈렸고 반 가까운 도민이 최 지사를 외면했다. 도민 화합을 위한 구상은….
“큰 틀에서는 영동 대 영서 대결로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희석됐다. 영동 출신인 최흥집 후보는 영서인 횡성과 철원에서 이겼다. 영서 출신인 나는 속초에서 이겼다. 앞으로 도정을 이끌면서 차별과 구분 없이 인사, 정책, 재정을 균형 있게 집행하겠다.”
―강원과 충청을 새정치연합이 석권해 중부벨트가 형성됐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야당이 지난 총선에서 형편없이 졌고, 대선에서도 져 2연패했다. 이번에도 지면 3연패인데 이번 6·4지방선거에서 다행히 무승부 정도를 거뒀다. 그것을 중부권에서 해 줬다.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았다고 본다. 다음 총선, 대선은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민선 6기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잘 준비하는 게 급선무다. 올림픽 자체를 잘 치르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활력을 찾았으면 좋겠다. 86아시아경기, 88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적 인지도가 상승했고 그것에 동반한 수출과 관광 등이 활성화되면서 경제가 살아났다. 개인소득이 연 2만 달러에서 오래 머물고 있는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3만 달러를 뛰어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림픽 준비 상황은….
“경기장 대부분이 올해 착공되는 등 하드웨어 쪽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관광, 문화, 음식, 통역 등 소프트웨어 쪽 준비가 부진한데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빚더미에 허덕이는 알펜시아리조트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있나.
“올림픽 유치를 위해 만들었는데 과잉 투자됐고 일부 호화시설은 분양이 안 됐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3년간 경영을 잘해서 지난해에 14억 원 정도 첫 흑자를 냈다. 빚이 약 1조2000억 원이었는데 지금은 9000억 원 정도로 줄었다. 빨리 빚을 갚고 민간에 매각을 할 방침이다.”
―복지공약을 많이 제시했는데….
“강원도 1년 예산이 4조 원 정도인데 30%까지 복지 재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기 때문에 복지를 늘리지 않으면 기초공동체 자체가 붕괴된다. 복지를 통해서 소비가 일어나고, 소비가 생산을 일으키고, 생산이 기업을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
―삼척원전 건설에 반대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도 강원도는 청정지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경북은 원전 유치가 공약이었다. 경북이 원하는 만큼 원전은 그쪽으로 넘겨주고 강원도는 친환경 에너지 공간으로 하면 서로 좋지 않겠나. 정부에 이를 건의하고 싶다.”
―국회의원 시절 ‘갑’에서 지금은 입장이 바뀐 것 같은데….
“명실상부한 ‘을’이 됐다. 하지만 을 역할을 잘하고 있다.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갑일 때는 갑을 하고, 을일 때 을을 하면 문제가 없다.”
―18대 국회의원을 하다가 2011년 보궐선거에서 도지사가 됐다. 여의도를 떠나 여의도 정치를 보는 느낌은 어떤가.
“지역의 현장 정치와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정치 현상과는 차이가 크다. 동해안 어민의 문제는 창고에 쌓여 있는 도루묵, 평창 농민의 문제는 감자 재고 등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나 행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민생 현장은 법과 행정의 테두리 밖에 있다. 행정이나 정치는 그것을 뛰어넘어야 국민과 가까워질 수 있다.”
―MBC 사장을 지냈다. 최근 KBS 길환영 사장 사태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나.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 정권 교체 때마다 사장이 바뀌고,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계속됐기 때문에 이제는 특별다수결제를 도입해야 한다. 사장을 뽑을 때 이사들이 과반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3분의 2로 결정하자는 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3분의 2로 하면 여야가 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중립적 인사를 뽑을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된다.”
―세월호 영향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개조론을 제시했다. 이를 평가한다면….
“방향이 잘못됐다. 세월호 문제는 소방방재청을 이리 붙이느냐, 국가재난처를 만드느냐 하는 행정조직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최초 인지한 지역의 재난 책임자가 조직과 예산을 쓸 수 있도록 의사결정권을 몰아줘야 한다. 외국은 그렇게 돼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강원도민에게 할 말은….
“이번 선거에 임한 슬로건이 ‘오직 강원’이었다. 정당, 정파, 지연, 혈연, 학연, 개인적인 정치적 소신 다 내려놓고 강원도민을 위해서 역량과 열정을 모두 바치겠다.”
최 지사와의 인터뷰는 23일 오전 8시 채널A ‘새 도지사에게 듣는다’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다.
▼ 서민 이미지 부각… 60m 번지점프도 ▼
‘조직열세’ 극복, 선거승리 비결은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선거 승리 비결에 대해 지역 정가에서는 그의 정감 있는 스킨십과 번지점프를 마다하지 않는 적극성을 꼽는다.
자칭 ‘불량 감자’라고 말할 정도의 서민적 외모에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친근한 스킨십이야말로 최 지사의 최대 강점으로 통한다. 유권자들의 손을 꼭 잡고 허리를 90도 가까이 꺾는 인사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 그의 이런 모습은 선거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볼 수 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말 최 지사는 새누리당 최흥집 후보의 텃밭인 강릉의 한 고교 동문체육대회에 참석했다. 기수별 천막 40여 개를 모두 들른 최 지사는 한잔, 두잔 건네는 술잔을 마다하지 못해 만취 상태가 됐고 차에 타자마자 실신하듯 쓰러졌다. 최 지사는 이날 자리를 같이했던 40대 이하 동문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최 지사는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투표율 독려를 위한 이벤트로 60여 m 높이에서 번지점프를 시도했다. 2011년 보궐선거 때에 이어 두 번째. 최 지사는 “3년 전에 비해 더 무서웠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패러글라이딩과 지프와이어까지 추가했다.
하지만 다음 달부터 시작될 민선 6기에서도 강원도 의원 44명 중 새누리당 소속이 36명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6명에 불과할 정도로 그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최 지사는 “5기에 비해 더 심해졌다”며 “하지만 내 인생은 역전승이 많을 정도로 평범하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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