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2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거취와 관련해 어떤 논의도 없었다고 한다. 문 후보자가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결심하지 않는 이상 청와대가 먼저 나서기 힘들다는 방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문 후보자가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도록 해명 기회를 충분히 가진 뒤 자진사퇴하는 방향으로 설득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문 후보자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인식 논란에 대해 다시 한 번 해명을 한 뒤 자진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靑, “가급적 오늘 자진사퇴”
청와대는 문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밟겠다고 버티더라도 지명철회라는 ‘극단적 카드’를 쓰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직접 지명철회를 한 사례는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선출한다’는 절차를 어겼기 때문에 절차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철회가 이뤄졌다”며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내정한 후보자를 지명철회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해법은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뿐이라는 얘기다.
청와대 안팎에선 늦어도 23일에는 문 후보자가 자신의 거취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귀국 후 문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재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마냥 시간을 끌 수 없는 상황이다. 문 후보자의 거취와 맞물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고민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당마저 반대 기류가 강한 상황에서 문 후보자가 청문회까지 간 뒤 낙마한다면 국정 공백이 너무 길어진다”며 “결국 문 후보자가 박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예정된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인선 논란과 관련해 의견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문 후보자의 거취는 23일 안에 정리돼야 한다.
21일 밤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주말 내내 다각도로 여론을 청취한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결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문 후보자 출구 명분 쌓아주기
청와대 내부에서는 문 후보자가 자진사퇴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여권 관계자는 “문 후보자가 두 차례 기자들에게 해명을 한 뒤 마음속 응어리가 좀 풀린 것 같다”며 “본인이 충분히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이 직접 문 후보자를 만나거나 통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문 후보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자가 그동안 “여권에서 사퇴 압박이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들은 게 없다”고 말해온 것도 박 대통령의 뜻을 직접 전달받겠다는 생각을 내비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문 후보자 사퇴를 밀어붙이는 건 정권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대희 전 대법관에 이어 문 후보자까지 잇따라 낙마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제대로 보호막을 쳐주지 않았다는 여론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문 후보자가 직접 해명에 나선 상황에서 문 후보자를 밀어내는 모양새를 취하면 오히려 보수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때문에 문 후보자와의 사전 의견 조율을 전제로 박 대통령이 일단 임명동의안을 재가한 뒤 문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는 방식을 취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 文, 주말 동안 자택에서 칩거
문 후보자는 주말 동안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후보자 사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총리실 관계자들은 문 후보자가 그동안 사퇴할 뜻이 없음을 여러 차례 내비쳤지만 박 대통령이 귀국한 이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전격 사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주말 내내 비상 대기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문 후보자는 주말 동안 특이 사항이 없으면 월요일 출근한다고 알려왔다”며 “(자신의 거취를 두고)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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