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2기 정부는 인사 참사로 얼룩졌다. 24일 자진 사퇴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 가보지도 못한 채 연속 낙마한 총리 후보자로 역사에 남게 됐다. 1952년과 2002년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국회 인준이 부결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 후보자가 이번처럼 시험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중도 탈락’의 수모를 연속으로 겪은 것은 처음이다.
여권은 인사 참사의 직격탄을 맞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달 넘게 국정 공백을 빚은 상황에서 출구(出口)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 어디에도 문제를 풀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총체적 무기력증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에 회의적이다. 한때 70%대를 넘나들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40%대로 내려앉은 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지지율은 문 후보자의 역사인식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지명 6일 만에 자진 사퇴한 지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문 후보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민들이 등을 돌린 탓이다. 김용준 후보자까지 포함하면 현 정부 들어 총리 후보자 3명이 중도 탈락한 셈이어서 청와대의 인사시스템 개편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인사 참사의 표적으로 지목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교체 요구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것도 박 대통령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또다시 낙마 사태를 겪지 않기 위해 이번만큼은 흠결이 없는 총리 후보자를 찾아야 한다는 두려움도 청와대의 인선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7월과 8월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했다. 하지만 당시는 집권 5년 차였고, 지금 박근혜 정부는 겨우 집권 1년 4개월 만에 비슷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집권 초기 강하게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때 국정 운영의 바퀴가 계속 헛돌고 있는 셈. 4월 27일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후 두 달간 정부의 구심점은 사라진 상태다. 게다가 국가정보원과 새로운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는 7개 부처도 일손을 놓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큰 선거가 없는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 국가 대개조 및 경제혁신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면 정치 일정상 2020년까지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며 “자칫 인사 논란 등으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미래의 국가발전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쌍두마차’로 국정을 주도해야 할 여당 내에서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다. 7월 14일 전당대회를 앞둔 새누리당 의원들은 유력 당권주자를 중심으로 세 대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7월 30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공천 시비까지 불거질 경우 새누리당의 위기가 더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문 후보자가 청와대와 갈등 없이 자진 사퇴의 형식을 취해 청와대가 청문회를 강행하는 부담을 덜어줬다는 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이젠 야당도 또 한 번 총리 후보자를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야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총리 후보자를 임명해 ‘국가 대개조’를 추진하면 여권 지지세도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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