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에서 낙마까지 15일간은 한국 사회 보수진영이 집결해 가는 과정이었다. 진보좌파 진영이 문 후보자의 보수우파적 역사관을 문제 삼으면서 좌우 진영 대결의 불을 지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 집결의 불을 댕긴 것은 문 후보자 지명 다음 날인 11일 KBS의 보도였다. KBS는 이날 9시 뉴스에서 “문 후보자가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문 후보자의 2011년 6월 온누리교회 강연 내용을 발췌해 보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은 “반민족적 망언”이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어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있던 문 후보자가 올해 1학기 수업에서 “일본에 위안부 문제로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여당에서도 문 후보자에 대한 반발 기류가 조성됐다. 친박(친박근혜)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은 1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실상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새누리당이 문 후보자를 포기할 조짐이 보이자 보수 성향의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문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보자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강연 전체를 보면 문 후보자를 일방적으로 친일 반민족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MBC는 20일 밤 ‘긴급 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을 편성해 강연 동영상을 40분가량 내보냈다.
문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떠나 인사청문회를 정상적으로 열어 역사관 논란을 검증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보수 시민단체인 선진화시민행동(상임대표 서경석 목사)은 ‘청문회는 꼭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에 온라인 서명을 받은 결과 서명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고 23일 밝혔다. 이 서명에는 언론, 종교, 문화예술계 등의 인사 482명도 함께했다.
서경석 목사는 24일 문 후보자의 사퇴 발표 직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KBS가 문 후보자에 대해 마녀사냥을 했다는 것을 국민이 다 알게 되는 참인데 자진 사퇴해 아쉽다”며 “앞으로 KBS에 대한 규탄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명에 동참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이번 사태는) 문 후보자 문제가 아니라 일부 언론이 조작, 선동을 해서 인격살인을 해버리는 것이 문제”라며 “이를 바로잡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한국의 민주화가 중우(衆愚)정치, 선동정치에 병들었다. 민주주의의 병”이라며 “적당히 하고 넘어가면 그 병은 깊어진다”고 우려했다. 문화예술계 인사의 서명을 주도한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도 “완전히 (문 후보자에 대한) 인권 침해”라며 “진보 진영에서 이 기회에 (박근혜) 정권을 망쳐놓으려는 것 같다. 나라가 이렇게 나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자가 물러났어도 문 후보자 거취 논란이 새로운 좌우 이념 대결로 번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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