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삼존불상 미소로 재판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4일 03시 00분


후배 판사들 70명은 자성의 시간… 고위 법관 출신 선배 변호사는 法의 심판대에
서울중앙지법 임성근 부장판사, 석달간 ‘법정 암행방청’ 뒤 조언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상. 동아일보DB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상. 동아일보DB
“다음 기일은 추정(추후 지정)합니다.” “재판을 속행(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법정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피고인이나 방청객이 있다는 사실을 판사들은 알까.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법관회의에서 70여 명의 판사가 모여 ‘자성(自省)의 시간’을 가졌다. 판사들 사이에 서로의 재판을 번갈아 방청한 내용을 모은 자료도 마련했다. 서울중앙지법 법정언행연구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재판부끼리 교차방청을 권고하고 그 결과를 종합한 것이었다.

일반 방청객의 시선에서 판사들이 지적한 문제점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기록만 본다’고 지적한 판사는 22명이나 됐고 ‘마이크와 멀어 목소리 전달이 잘 안 된다’ ‘어려운 법정용어를 남발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회의에서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17기)는 자신이 3개월간 동료와 후배 판사들의 재판을 몰래 방청하며 느낀 소감을 발표했다. “증인의 말을 제지하는 판사의 ‘하이 톤’ 목소리가 고압적으로 들리더군요. 3명의 판사로 이뤄진 합의부의 경우 가운데 앉은 부장판사가 좌우 배석 판사들과 한마디 상의 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은 독단적으로 판단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요.”

임 부장판사는 법관이 공정한 판결을 하는 것만큼이나 ‘공정하게 보이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이었다. 자애로운 표정으로 청중을 바라보는 불상처럼 법정을 찾은 국민을 따뜻하게 맞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수석부장판사가 법정에 들어와 몰래 방청한 줄 몰랐던 판사들은 시선 처리에서 목소리 톤, 표정 하나하나까지 관찰한 예리한 지적이 이어지자 자신에게 해당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되돌아봤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판사는 “명령형보다는 청유형으로 말하고 다음 재판 날짜를 고지할 때 요일까지 덧붙여 헷갈리지 않게 하자는 아이디어는 바로 실행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임 부장판사는 각 재판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방청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암행 방청’을 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김형식#철피아#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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